金昌水
昌水1887. 7. 26 ~ 1957. 9. 2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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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1995) 1887년 7월 26일 경상북도 영일군(迎日郡) 달전면(達田面) 이인동(里仁洞)(현 포항시 남구 연일읍(延日邑) 달전리(達田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인선(仁善), 이명으로 김창수(金昌洙)라고도 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국권이 위기에 이르자 광무황제의 밀조(密詔)를 받은 시종관(侍從官) 정환직(鄭煥直)은 아들 정용기(鄭鏞基)에게 의병을 일으키게 하였다. 정용기는 고향 경북 영천(永川)으로 내려와 뜻있는 동료들과 함께 통유문(通諭文)과 격려문(激勵文) 등을 작성하여 각계각층에 보내 총궐기할 것을 촉구하였다. 1906년 (음)3월 산남의병부대를 결성하고 대장에 오른 정용기는 휘하에 중군장 이한구(李韓久), 참모장 손영각(孫永珏), 소모장 정순기(鄭純基) 등을 임명하는 등 의병부대를 편성하였다. 이때 소모장으로 선임된 정순기는 그의 처남(妻男)으로, 산남의병부대가 계획될 때부터 내부찬획(內部贊劃)으로 활동하였다. 각 지역에 책임자를 배치하여 의병 모집을 분담하게 할 때, 최세한(崔世翰)·정내의(鄭來儀)·조성목(趙性穆)과 함께 경북 흥해(興海) 지방을 담당하여 군사를 모으고 군자금을 조달하는 한편 정세를 정탐하여 의병부대에 보고하는 역할을 하였다. 산남의병부대는 1907년 7월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개시하였다. 하지만 그 해 (음)9월 2일 영일군 죽장면(竹長面) 입암전투(立巖戰鬪)에서 대장 정용기 이하 여러 장수와 병사들이 전사하였다. 아들을 대신해 아버지 정환직이 남은 병사들을 규합하여 다시 의병부대를 일으켰으나 일본군에게 잡혀 영천에서 사망하고, 의병부대는 최세윤(崔世允)에게로 이어졌다. 최세윤 대장은 의병부대를 각 지역별 지대(枝隊)로 편성하여 유격전을 전개하도록 하였으나 1908년 7월 일본군에게 잡히게 되었다. 이에 의병부대가 구심점을 잃고 해산되자 이 무렵부터 은신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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