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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振化

振化

1874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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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振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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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담양(潭陽)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담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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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김동신
  • · 정일국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전라남도 담양군(潭陽郡) 무릉면(武陵面) 오현동(五玄洞)에서 태어났다. 자료에 따르면 1909년 활동 당시 36세였던 것으로 보아 1874년 생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06년부터 전라남도와 경상남도 지역에서 의병으로 활동하였다. 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미로 한 일제의 압력으로 광무황제는 1907년 7월 황제의 직을 양위하였다. 7월 24일 정미7조약 체결로 대한제국은 행정권을 일제에 빼앗겼다. 협약 시행령에 따라 대한제국 군대는 강제로 해산되었다. 일제의 이러한 조치에 항거하여 각지에서 의병이 분기하였다. 일제는 1907년 7월 하순 대한제국 군대 해산 이전에 한국에 일본군 보병 제12여단을 추가로 파병하였고, 이후 의병 탄압을 목적으로 도합 4차에 걸친 여단 급 병력을 증파하였다. 의병은 1907년 11월부터 1909년까지 일본군과 약 5,000회의 전투를 치렀으며, 전투에는 12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의병으로 참가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제는 1907년 11월에서 1908년 7월까지 매달 평균 1,000여명의 의병을 학살하였다. 전라도 지역은 을미의병 이래 노사학파(蘆沙學派)와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 계열의 유림들을 중심으로 한 의병 활동이 활발하였던 곳이다. 당시 출신지에 거주하면서 의병장 김동신(金東臣)·정일국(鄭一國)의 의병부대에 합류하여 1906년 7월부터 1908월 1월까지 전남 구례(求禮)·담양, 경남 안의(安義)·거창(居昌)·하동(河東) 지역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많을 때는 5백여 명, 적을 때는 40여 명의 의병대에서 총을 휴대하고 활동하였다. 이후 붙잡혀 1909년 10월 8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7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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