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직순
金稷舜1879. 11. 10 ~ 1908. 5. 2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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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1879년 11월 10일 전라남도 고흥군(高興郡) 고흥면(高興面) 성촌리(城村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김직현(金直鉉)·김직순(金直順)이다. 1907년 전남 보성(寶城)에서 의병으로 활동하기까지의 행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대한제국은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겼고, 1907년 6월 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미로 한 일제의 압력으로 고종은 7월 19일 순종에게 황제 직을 양위하였다. 또한 7월 24일 한일신협약(정미7조약) 체결로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시키는 조치가 취해졌다. 대한제국은 행정권을 일제에 넘기게 되었다. 나아가 협약 시행령에 준하는 부수각서(附隨覺書) 내용에 따라 일본인이 대한제국 사법 관리에 임용되게 되었으며,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시키는 조치가 취해졌다. 이에 따라 1907년 8~9월에 걸쳐 대한제국 군대는 공식적으로 해산되었다. 대한제국 해산 군인들은 이 조치에 항거하여 각지에서 의병으로 분기하였다. 고종 퇴위와 정미7조약 체결 및 군대 해산으로 인해 궐기한 의병을 정미의병, 혹은 후기의병이라 한다. 이에 일제는 의병 ‘토벌’에 나섰다. 1907년 7월 하순 대한제국 군대 해산 이전에 일제는 한국에 일본군 보병 제12여단을 추가로 파병하였고, 이후 의병 ‘토벌’을 목적으로 도합 4차에 걸쳐 여단급 병력을 증파했다. 이에 따라 의병은 1907년 11월부터 1909년까지 일본군과 약 5,000회의 전투를 치렀으며, 전투에는 1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의병으로 참가했다. 이 과정에서 일제는 1907년 11월에서 1908년 7월까지 매달 평균 1,000여 명의 의병을 학살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전라도 지역은 을미의병 이래 노사학파(蘆沙學派)와 간재학파(艮齋學派),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 계열의 유림들을 중심으로 한 의병 활동이 활발하였던 곳이다. 1907년 전남 보성에서 의병장 안규홍(安圭洪) 의병부대에 합류하였다. 1908년 전남 고흥·광양(光陽)·보성 지역 및 광주(光州)와 화순(和順) 사이의 너릿재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1908년 3월 고흥 지역의 헌병분견소 관헌에게 붙잡혔고, 5월 21일에 피살당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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