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知善
知善미상 ~ 1909. 1. 5
포상 정보
- · 애족장(2003)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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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3) 출생 시기와 출신지는 알 수 없다. 이명은 김지선(金之仙)을 사용하였다. 1908년 강원지역에서 의병 활동을 지원하다가 일본군에게 붙잡혀 피살되었다. 대한제국은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하였고 1907년 6월 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미로 한 일제의 압력으로 인해 고종은 7월 19일 순종에게 황제의 직을 양위하였다. 또한 7월 24일 한일신협약(정미7조약) 체결로 대한제국은 행정권을 일제에 박탈당하였다. 나아가 협약 시행령에 준하는 부수각서(附隨覺書) 내용을 통해, 일본인이 대한제국 사법 관리에 임용되게 되었으며,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시키는 조치가 취해졌다. 이에 따라 1907년 8~9월에 걸쳐 대한제국 군대는 공식적으로 해산되었다. 나아가 일제는 1907년 9월 총포 및 화약단속법을 공포하여 한국인의 무기 소지를 금지하였고, 기존에 소지한 총포류는 반납하도록 하였다. 대한제국 군인들과 산포수들은 이러한 조치에 항거하여 각지에서 의병으로 분기하였다. 고종 퇴위와 정미7조약 체결, 군대 해산으로 인해 궐기한 이들을 가리켜 정미의병, 혹은 후기의병이라 부른다. 이에 일제는 의병 이른바 ‘토벌’에 나섰다. 1907년 7월 하순 대한제국 군대 해산 이전 일제는 한국에 일본군 보병 제12여단을 추가로 파병하였고, 이후 의병 ‘토벌’을 목적으로 도합 4차에 걸친 여단급 병력이 증파되었다. 이에 따라 의병들은 1907년 11월부터 1909년까지 일본군과 약 5,000회의 전투를 치렀으며, 전투에는 1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의병으로 참가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제는 1907년 11월에서 1908년 7월까지 매달 평균 1,000여 명의 의병을 학살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강원지역은 을미의병 이래 화서학파(華西學派) 유림, 산포수들을 중심으로 한 의병 활동이 활발하였다. 이때 일본군의 동향을 정찰하는 등 의병 활동을 지원하였다. 1909년 1월 5일 밀정 김성대(金成大)의 밀고로 철원읍(鐵原邑) 동남쪽 약 0.5리 떨어진 곳에서 철원수비대에 붙잡혔다. 조사를 받던 중 탈출을 시도하였으나, 일본군에게 희생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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