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周鳳
周鳳1889. 7. 24 ~ 1981. 3. 2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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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0) 1889년 7월 24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서선면(西先面) 수동(水洞)에서 태어났다. 1908년 의병에 참여하기까지의 성장과정과 행적은 알 수 없다. 대한제국은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1907년 6월 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미로 한 일제의 압력으로 인해 고종은 7월 19일 순종에게 황제의 직을 양위하였다. 또한 7월 24일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의 체결로 대한제국은 행정권을 일제에 박탈당하고 내정 감독을 일본 통감이 담당하게 되었다. 나아가 협약 시행령에 준하는 부수각서(附隨覺書) 내용을 통해, 일본인이 대한제국 사법 관리에 임용되게 되었으며, 징병제에 의한 정예군을 양성한다는 미명 하에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되는 조치가 포함되었다. 이에 따라 1905년 일제가 군제개혁을 빌미로 황제 직속의 군 지휘 관청인 원수부(元帥府)를 폐지하여 이미 그 규모가 반으로 축소된 대한제국 군대는, 1907년 8월 1일 서울의 친위대(親衛隊)와 시위대(侍衛隊)를 시작으로 9월 3일 함경남도 북청(北菁靑) 진위대(鎭衛隊)에까지 해산령이 하달, 공식적으로 해산되기에 이르렀다. 나아가 일제는 1907년 9월 총포급화약단속법을 공포하여 한국인의 무기 소지를 금지하였고, 기존에 소지한 총포류는 반납할 것을 지시하였다. 대한제국 군인들과 산악 지역 산포수들은 이러한 조치에 항거하여 각지에서 의병으로 분기하였다. 고종 퇴위와 정미7조약 체결 및 군대 해산으로 인해 궐기한 이들을 가리켜 정미의병, 혹은 후기의병이라 부른다. 이전 의병이 주로 비전투원의 결집에 의한 비정규군의 성격을 가졌다면, 이 시기 의병은 군인과 포수의 참여로 인해 군사기술이 전문화되는 경향을 띠었고, 지휘체계 또한 대한제국 군제와 유사한 형태로 운용되었다. 또한 의병부대 간의 연합작전이 활발히 진행되었고, 장기 항전을 위한 거점과 군자금 및 군량미를 수급할 수 있는 기반 마련에 힘썼다. 이러한 가운데 당시 경북 지역은 화서학파(華西學派)의 유림 출신 이강년(李康秊), 대한제국 군인 출신 민긍호(閔肯鎬)를 중심으로 한 의병 활동이 활발하였던 곳이다. 이 당시 안동군 서선면 수동 중동(中洞)에 거주하면서, 1908년 안동군 서후면(西後面) 독실(獨實)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 일본 군경에 붙잡혔다. 1908년 9월 11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징역 7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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