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鍾玉
鍾玉미상 ~ 1907. 8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이강년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5) 출생 시기는 알 수 없고, 충청북도 청주(淸州) 출신이다. 가족관계나 성장과정을 알 수 있는 자료도 남아있지 않다. 다만 『운강선생창의일록』 의 기록을 통해 이강년(李康秊) 의병부대에서 활동하다 사망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언제, 어떠한 계기로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는지는 자료에 나타나지 않으나 출신지가 청주인 점, 사망한 곳이 영월 부근으로 추정된다는 점에서 이강년 의병부대가 충북에서 활동할 때 가담한 것으로 보인다. 의병장 이강년은 1907년 일제에 의한 고종의 강제퇴위와 한일신협약으로 인한 군대해산 조치에 분노하여 충북 제천에서 거의하였다. 1907년 제천에서 봉기한 이강년은 이후 단양·제천·원주·연풍·횡성·강릉·충주·용천·영주·봉화·안동 등 충청·경상·강원 등 여러 지역을 오가며 의병항쟁에 나섰다. 해산된 원주진위대의 무기를 얻은 윤기영(尹起榮)의 소식을 듣고 원주로 갔던 이강년이 의병부대와 함께 남진해 제천 천남(泉南) 전투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민긍호(閔肯鎬) 부대를 비롯해 각지에서 제천으로 모인 여러 의병부대 부대장들은 이강년을 도창의대장(都倡義大將)으로 추대하였다. 주천에서 의병부대를 재정비한 이강년은 9월 갈평(葛坪) 전투에서 일본군과 교전하고 총검과 탄환 등의 무기를 얻었다. 이후 단양을 거쳐 영월 방면으로 향하였다. 영월은 당시 의병부대의 전략적 요충지로, 원주진위대로부터 얻은 무기를 영월과 제천의 경계인 배양산 골짜기 동굴 속에 숨겨두어 필요할 때마다 가져와야 했기 때문에 그곳에 주둔하며 항쟁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1907년 10월 의병부대가 녹번리(綠藩里)(현 영월군 중동면 녹전 3리 삼굿마을로 추정)에 도착하여 이강년이 소모장 남필원(南泌元)과 성황(城隍) 숲에서 상황을 지켜보다 어두울 무렵 동내리(洞內里)로 내려왔을 때, 그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되었다. 1907년 10월 1일(1907년 (음)8월 24일) 사망하였다. 『운강선생창의일록』 에 ‘기계에 상처를 입고 참혹하게 죽었다(爲器械所傷慘死)’고 기록되어 있다. 의병부대가 충북 일대에서 활동할 때 의병부대를 따라 종군하면서 의병항쟁을 전개하다가 영월 부근에 숨겨놓은 무기를 관리하던 중 상처를 입고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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