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鐘植
鐘植1882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5) 서울 서부(西部) 황토현(黃土峴)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82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경기 지역에서 의병으로 활동하다 붙잡혀 고초롤 겪었다. 대한제국은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기고, 1907년 6월 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미로 한 일제의 압력으로 고종은 7월 19일 순종에게 황제의 직을 양위하였다. 또한 7월 24일 제3차 한일신협약(정미7조약) 체결로 대한제국은 행정권을 일제에 병탄 당하였고, 내정 감독을 일본 통감이 담당하게 되었다. 나아가 협약 시행령에 준하는 부수각서(附隨覺書) 내용에는 징병제에 의한 정예군을 양성한다는 미명 하에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시키는 조치가 포함되었다. 이에 따라 1907년 8월 1일 서울의 친위대(親衛隊)와 시위대(侍衛隊)를 시작으로 9월 3일 함경남도 북청(北菁靑) 진위대(鎭衛隊)에까지 해산령이 하달, 군대가 공식적으로 해산되기에 이른다. 나아가 일제는 1907년 9월 총포급화약단속법을 공포하여 한국인의 무기 소지를 금지하였고, 기존에 소지한 총포류는 반납할 것을 천명하였다. 대한제국 군인들과 산악 지역의 산포수들은 이 조치에 항거하여 각지에서 의병으로 분기하였다. 고종 퇴위와 한일신협약 체결, 군대 해산으로 인해 궐기한 이들을 가리켜 후기의병(정미의병)이라 부른다. 이전의 의병이 주로 비전투원의 결집에 의한 비정규군의 성격을 가졌다면, 이 시기의 의병은 군인과 포수의 참여로 인해 군사기술이 전문화되는 경향을 띠었고, 지휘체계 또한 대한제국 군제와 유사한 형태로 운용되었다. 또한 의병부대간의 연합 작전이 활발히 진행되었고, 장기 항전을 위한 거점과 군자금, 군량미를 수급할 수 있는 기반 마련에 힘썼다. 이러한 가운데 기호 지역은 해산령에 불복한 군인들이 중심이 된 의병활동이 활발하였으며, 1908년 13도창의군(十三道倡義軍)의 서울진공작전 무대가 되었던 곳이다. 1908년 1월 11일 노봉현(盧鳳鉉)·강화순(姜和淳)·손영식(孫永植)과 함께 서울 북부 교외 사기막(沙器幕)에서 순사 이동희(李東熙)를 찾아 연행하고, 그를 북한산(北漢山) 삼각(三角) 뒷기슭 산골짜기에서 처단하였다. 이후 일제 관헌에게 붙잡혀 1909년 12월 14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징역 7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대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