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金漢水1897 ~ 미상
관련 단체
- · 대한군정서
포상 정보
- · 애족장(2012)
관련 사건
- · 1922년 신건원주재소 습격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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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2) 출신지는 알 수 없다. 자료에 따르면 1922년 당시 30세로 1897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이명으로 한자가 다른 김한수(金漢壽·金漢洙)를 사용하였다. 대한군정서원(大韓軍政署員) 김학섭(金學燮)과 함께 1922년 신건원주재소(新乾源駐在所)를 습격한 점에서 김학섭과 연관이 깊어 보인다. 김학섭은 1921년 12월 러시아 시지미 지방에서 강병관·강석훈 등을 만나서 국내로 들어와 일제 관공서를 공격하고 무기 등을 확보할 계획을 세웠다. 이들은 공격 목표를 함북 웅기(雄基)로 정하고 사전 준비를 위하여 동년 12월 30일 출발하였다. 이때 김학섭으로부터 계획을 전해들은 김한수 일행 역시 시미지를 출발하여 북간도 일하후(日下垢)에서 김학섭과 다시 만났다. 그러나 계속되는 행군으로 낙오하는 대원들이 생기는 등 계획상 차질이 생기자 목표를 변경하여 함북 경원군(慶源郡) 신건원주재소를 공격하기로 결정하였다. 1922년 1월 4일 밤 두만강을 건너 신건원에 도착한 후 대원을 3개조로 나누었다. 제1조 및 제2조는 신건원 입구 양측 고지를 점령하여 수비대의 출동을 제압하고 제3조는 신건원주재소를 공격하기로 하였다. 이때 문창학(文昌學) 등과 함께 신건원주재소에 대한 공격을 담당하였다. 문창학은 신건원주재소에서 헌병보조원을 지낸 경력이 있어 지리에 밝았기 때문이었다. 1922년 1월 5일 새벽 1시 동료들과 함께 주재소를 공격하여 건물을 파괴하고 일본 순사를 처단한 후 전원이 두만강을 넘어 퇴각하였다. 1922년 12월 중순 한인 밀정의 밀고에 의해 김학섭·문창학 등이 훈춘(琿春) 일본영사관에 체포되었다. 이때 체포되지 않아서 결석재판을 받았다. 1923년 5월 26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열린 결석재판에서 이른바 살인·폭발물취체벌칙 위반으로 무기징역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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