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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忠國

忠國

1900. 7. 14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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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忠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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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북청(北靑)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북청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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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임시정부 독립단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관련 사건

  • · 임시정부 독립단 자금 모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1900년 7월 14일생으로 출신지는 함경남도(咸鏡南道) 북청군(北靑君) 덕음리(德音里)이다. 집안 배경과 성장 과정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 없다. 1922년 2월경에 만주로 이주하여 중국 지린성(吉林省) 허룽현(和龍縣) 용정촌(龍井村) 신촌(新村)에 정착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단(獨立團)에서 활동하였다. 국내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1922년 4월 만주의 동흥중학교(東興中學校)에 입교하였다. 동흥중학교의 설립자는 천도교인이자 북간도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의 경호부원과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 참모부 서기 등을 역임하였던 최익룡(崔翌龍)이었다. 천도교인들이 자금을 모아 1921년 10월에 용정에 민족학교인 동흥학교를 설립하였다. 동흥중학교 4학년 재학 중에 동향인 한탁열(韓鐸烈)의 소개로 1924년 6월에 임시정부 산하의 독립단에 가담하였다. 독립단은 1919년에 임시정부의 수립과 함께 이시영(李始榮)·최창식(崔昌植) 등이 주도한 임시정부 산하단체로서, 국내 친일관리의 회유와 포섭, 국내에서의 군자금 모집 및 연락 담당 등을 시행하던 특무조직이었다. 임시정부 산하의 특무조직들은 1920년 중반에 창조파(創造派)-개조파(改造派) 논쟁과 지도자 교체 등의 혼란상에도 불구하고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일본 경찰이 이를 검거하기 위해 일시 호구 조사를 벌이기도 하였다. 1924년 6월 12일 머무르고 있던 용정 신촌 한명서(韓明瑞)의 집에서 임시정부의 모연대원(募捐隊員)인 허문보(許文甫)·김창준(金昌俊)과 권총으로 무장하고 군자금 강제 징수에 나설 것을 계획하였다. 이에 그 날 밤에 실행에 옮기고자 허룽현 증지사(曾智社) 신명촌(新明村)에 위치한 윤위석(尹威錫)의 집으로 이동한 후 윤위석을 권총으로 위협하며 6월 28일까지 군자금 300원의 제공을 요구하였다. 윤위석 부자가 당장에 돈이 없다고 하자 당일에 징수치 못하고, 그 후 몇 차례 윤위석의 집에 찾아갔으나 윤위석 부자는 몸을 피하고 가족만 남아있어 남은 가족에게 군자금 30원을 징수하였다. 그러나 그 동안에 날이 밝으면서 동네 주민들이 이들을 강도로 오인하고 잡으려 모여들자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 이에 허문보가 황급하게 권총을 발사하여 주민 2명을 쓰러트리고 도피하다가 주민 윤정학(尹鼎學)이 쏜 총에 사망하였고, 김창준은 탈출하였다. 이때 홀로 일경에게 붙잡혔다. 1924년 11월 5일 청진지방법원에서 15년 징역을 받고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25년 1월 26일에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형을 확정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배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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