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秋霜
秋霜미상 ~ 1934. 8
관련 단체
- ·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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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5) 정확한 출생연월일, 출신지와 언제 만주지역으로 이주하였는지 상세한 행적은 사료를 통해 파악할 수 없다. 만주 지역으로 이주 후 신빈현(新賓縣) 왕청문(旺淸門) 일대에서 거주하였고,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의 군인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1929년 4월 1일 현익철(玄益哲)·현정경(玄正卿)·이웅(李雄) 등을 중심으로 군정위원회의 성격의 국민부(國民府)가 설립되었다. 1929년 9월 20일 제1차 중앙의회를 개최하여 선언문을 발표하여 강령과 헌장을 개정하였으며, 이에 따라 9월 27일에는 새로운 중앙집행위원회가 구성되었다. 12월에는 원래의 독립군을 조선혁명군으로 개편하며, ‘이당치국(以黨治國)’의 원칙하에 국민부·조선혁명당·조선혁명군 세 기관으로 분리하였다. 조선혁명군은 국민부와 조선혁명당을 기반으로 한 독립군 전투부대였다. 조선혁명군 소속 군인은 친일파 숙청, 교민 보호, 국내진입작전 전개를 통한 일제기관 파괴, 일본 관헌과 친일부호 응징 등의 임무를 맡아 수행하였다. 지휘체계는 총사령·부사령·참모장으로 구성되었으며 양세봉(梁世奉)이 부사령으로 있었다. 1931년 만주사변 이후 만주지역의 형세가 일본 쪽으로 기울게 되면서, 독립운동단체들은 점차 중국군과의 연합작전을 도모하였다. 1932년 3월부터 조선혁명군은 중국 탕쥐우(唐聚五) 등의 요녕자위군(遼寧自衛軍), 사령관 리춘룬(李春潤) 부대와 3개월간 연합군을 형성하여 일본군과 전투를 하였다. 동지들과 함께 선봉에서 격전 끝에 싱징(興京), 영릉(永陵) 일대에서 여러 차례 승전을 거두었다. 그러나 싱징 방면 연합군의 세력이 점점 고립되면서, 일본군은 정예 부대를 증원하여 사방으로 포위 태세를 취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 전투를 치르던 중 밀정의 계략에 빠져 일본군에 붙잡혔다. 양세봉과 평소 친분이 있었던 일제의 밀정 박창해(朴昌海)는 직간접적으로 조선혁명군을 후원하던 호산나(胡山那) 동양방(東洋幇)의 중국인 왕밍판(王明藩)이라는 자를 매수하여 양세봉을 만나 군사문제를 협의하기를 요청한다고 유인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1934년 (음)8월 12일 양세봉을 호위하며 김광욱(金光旭)·김성해(金星海)와 같이 대랍자구(大拉子溝)로 가던 중, 돌연 일본 경찰 수십 명에게 포위당하였다. 양세봉은 일본군의 항복 요구에 불복하여 현장에서 피살되었다. 이 때 다른 대원들과 함께 일본군에게 붙잡혔다. 며칠 후 일본군의 눈을 피해 산 중턱에 평장(平葬)한 양세봉의 묘가 일경에게 발각되자, 일경은 묘를 파헤치고 사령관의 목을 찌르라고 하였다. 이에 불복하고 혀를 깨물어 저항하다가 피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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