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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昌鎭

昌鎭

미상 ~ 1924.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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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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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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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의성단(義成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평안북도 출신이다. 활동 당시 김창호(金昌鎬)라는 이명을 사용하였다. 만주로 이주하여 의성단(義成團)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이후 국내외 독립운동의 열기가 고조되면서 만주에서도 여러 독립운동단체들이 만들어졌다. 이즈음 의성단에 가입하여 활동을 전개하였다. 의성단은 1923년 11월 편강렬(片康烈)·양기탁(梁起鐸)·남정(南正) 등을 중심으로 만주 봉천성(奉天省) 회덕현(懷德縣) 오가자(五加子)에서 조직되었다. 의성단의 목표는 청년대원을 양성할 것, 한국인 농촌의 안전과 부흥을 도모할 것, 친일 분자를 숙청하고 일본인 기관을 파괴할 것 등이었다. 이를 위해 여러 번 국내에 진입하여 작전을 수행하였다. 의성단의 일원으로서 서간도를 중심으로 무장투쟁과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4년 5월 하순 김홍진(金洪鎭)의 고향인 경북 영일군(迎日郡) 죽남면(竹南面) 상옥리(上玉里)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국내로 진입하였다. 김홍진의 고향 친구인 이진규(李晋奎)의 집에서 하루를 머무르고 영덕군(盈德郡) 남정면(南亭面) 토암동(土岩洞)에 있는 조상의 묘에 성묘하기로 계획하였다. 그러나 이튿날인 6월 9일 오후 5시 장사동(長沙洞) 소재 영덕경찰서 장사경찰관 주재소 남쪽을 지날 때 불심검문을 받았다. 순사 오기영(吳基永)에 의해 주재소로 연행되어 수석 순사 무라세시 게이치(村瀨重一)로부터 수색을 받았다. 탁상 위에 가진 보자기를 놓고 수사를 받던 중, 몸 속에 숨긴 총을 꺼내 두 일본인 순사와 총격전을 벌여 오기영의 대퇴부와 어깨, 무라세시의 무릎과 대퇴부에 총상을 입히는 전과를 올렸으나,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증파된 순사들에 의해 결국 살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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