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昌鎰
昌鎰1901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광정단(光正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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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5) 함경남도 갑산군(甲山郡) 운흥면(雲興面) 동신리(東新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01년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이명은 김창영(金昌泳)이다. 가족관계와 도만(渡滿) 경위는 자료의 한계로 알기 어려우나, 1922년 서간도(西間島) 창바이현(長白縣) 16도구(道溝) 소덕수리(小德水里)에 거주하며 광정단(光正團)의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광정단은 1922년 4월경 창바이현에 본부와 지단(支團)을 설치하고 있던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흥업단(興業團)·대진단(大震團)·태극단(太極團) 등이 통합해 이루어진 독립군단이었다. 윤덕보(尹德甫)를 단장으로 한 본부인 총부(摠部)를 장백현 17도구 동평덕리(東坪德里)에 두고 재무·군사·서무·경호·의사·권업·문화·통신·회계·위생 등 부서를 16, 17, 18도구에 분산 배치하였다. 16도구 소덕수리는 최진용(崔鎭鏞)을 부장으로 한 경호부가 배치된 지역이었다. 1922년 9월 20일 소대장 강승경(姜承慶)의 지휘 아래 38명으로 구성된 유격대의 일원이 되었다. 구성원 모두 장총 또는 권총과 40~100발의 탄환을 소지한 완전 무장의 대규모 유격대였다. 국경을 넘어 9월 25일 새벽 함경남도 삼수군(三水郡) 영성면(嶺城面)에 있는 일제 주재소 앞에 도착했다. 새벽 4시 대장 강승경의 명령에 의해 주재소를 향해 집중 사격을 가했다. 그리고 주재소 내부로 진입하여 당직 중인 일본인 순사 마쓰이(松井好)와 호리우치(堀內宗三), 한국인 순사 김동정(金東挺)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 마쓰이는 현장에서 즉사했고, 다른 두 명은 부상을 입은 채 피신하였다. 유격대는 주재소를 장악한 후, 또 한명의 한국인 순사인 이석윤(李錫潤)의 집을 급습하였다. 주재소가 공격받는 소리를 듣고 이석윤이 집 밖으로 나갔기에 처단하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이석윤의 처 최씨에게 전투에 필요한 군수품과 현금을 군자금으로 징수하였다. 작전이 끝난 후 유격대는 마을로 통하는 모든 전신과 전선을 잘라버린 후 철수하였다. 추격대의 출발을 늦추기 위해 전신과 전선을 잘랐지만, 일제의 경찰대가 곧 쫓아왔다. 강승경 대장의 지시에 의해 유격대를 나누어 귀대하던 중 동지 김서운(金瑞雲)·한진술(韓鎭述)과 붙잡혔다. 함흥지방법원에서 무기징역을 받고 항소했으나, 1923년 6월 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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