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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昌龍

金昌

1890 ~ 1930.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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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昌龍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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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대한청년회
  • · 대한군정서
  • · 광복군총영
  • · 통의부
  • · 정의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2) 평안북도 출신이다. 일제 측 기록에 따르면 1890년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20년 11월 대한청년회(大韓靑年會)에 가입하여 간사부(幹事部) 간사장을 맡았다. 1921년에는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 경신분국 제39분국 3과장으로 활동하였다. 경신분국은 군사상 경사(警査)와 통신에 관한 사무를 담임하는 조직이었다. 1922년 8월 7일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 제1회 총회에 참가하였다. 1924년 통의부 유격대 제2소대장, 의용군(義勇軍) 제3유격대장을 지냈다. 같은 해 6월에는 통의부 행정위원비상회의(行政委員非常會議)가 개최되어 의용군 소대장에서 중대장으로 승진하였다. 이후 김하석(金河錫)·문학빈(文學彬)과 함께 의용군 유격중대 중대장으로 활동하였다. 부대원은 35명이었으며, 소총 14정, 권총 19정, 폭탄 8개로 무장하고 있었다. 서간도(西間島) 콴뎬현(寬甸縣)에서 주둔하다가 7월 16일에 적군과 격돌하여 장시간 교전하다가 중상을 입었다. 1924년 말에는 통의부 제7중대장, 헌병대장이 되어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1925년에는 정의부에서 사령관 오동진(吳東振) 휘하 8중대 중대장으로 활동하였다. 1930년 8월 8일 국민부(國民府)가 창건 초기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 중앙집행위원회의 소집 이후로 좌·우파 갈등에 의해 옹호파와 반대파로 나누어지게 되면서 국민부를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9월 20일에는 국민부 반대파라는 이유만으로 옹호파에 의해 동원된 조선혁명군에게 암살당하였다. 다른 기록에서는 삼도구(三道溝) 주민 대표로 현지 농민들의 요구를 내세워 세금 교부를 거절하자 국민부 강동총관(江東總管) 등이 암살했다고도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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