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김창도

金昌道

1883 ~ 1923. 7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창도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미상만주방면

관련 단체

  • ·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포상 정보

  • · 애족장(2008)

관련 사건

  • · 통화현 통북(通北) 전투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8) 출신지는 미상이다. 일제 측 기록에 의하면 1883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도만(渡滿) 경위 역시 자료의 부족으로 알 수 없다. 1923년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의용군 대원으로 활동하였다. 대한통의부 재무부 소속 모연위원으로 활동한 기록도 있으나 문서 생산 시기와 조사 시기를 확인할 수 없어 판단하기 어렵다. 대한통의부는 1920년 10월부터 간도참변(경신참변) 후 남만주(南滿洲)지역 이주 한인사회와 독립군 진영을 재건하기 위해 1922년 8월 성립된 통합 독립운동 단체였다.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 등 17개 단체가 통합에 가담하였다. 통합에 참여한 단체의 구성원들은 기존에 가졌던 이념과 노선을 초월하여 오직 민족의 독립을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하였다. 하지만 대한통의부는 1922년 후반 전덕원(全德元)·채상덕(蔡相悳) 등의 복벽주의자들과 양기탁(梁起鐸)·현정경(玄正卿) 등 공화주의자 간에 갈등이 생겨 무력충돌이 일어나고 말았다. 결국 복벽주의자들은 1923년 2월 대한의군부(大韓義軍府)를 결성하여 조직을 이탈하였다. 대한통의부 의용군으로 대한의군부와 협상에 참여하였다. 두 단체가 분리되었으나 양측의 갈등은 종식되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대한통의부는 의군부와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하였다. 협상은 통의부 군법국장(軍法局長) 이종건(李鍾乾)이 맡았다. 이종건은 1923년 초 협상을 위한 인원을 차출하였다. 30명의 대원과 함께 협상을 위한 대원으로 차출되었다. 이종건을 필두로한 30여 명과 함께 의군부 참모부장 박일초(朴日楚)가 이끄는 독립군진영이 있는 퉁화현(通化縣) 통북(通北)지방으로 갔다. 박일초 군의 진영 앞에서 그들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때, 갑자기 40여 명의 중국군이 나타나 공격해 왔다. 박일초 군과는 협상도 하지 못한 채 중국군과 격전이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동료 대원 3명과 함께 전사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