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성
金燦成1888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국민부(國民府)
- ·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
포상 정보
- · 애족장(201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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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3) 평안북도 구성군(龜城郡) 서산면(西山面) 대리동(大里洞)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88년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만주지역에서 한인 자치기관 국민부(國民府)에 참여했고, 산하의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에서 활동하였다. 국민부는 1920년대 후반 만주지역에서 전개된 민족유일당운동과 3부 통합운동의 결과로 1929년에 조직되었다. 자치기관 수립과 함께 조선혁명당과 조선혁명군이 조직되었다. 국민부에 가입한 직후 조선혁명군에 참여하였다. 조선혁명군은 “국민부로부터 엄연히 분립하여 혁명운동에 대한 군사적 역할을 전적 임무로 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조선혁명군은 한인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 할 뿐만 아니라, 친일파 처단, 국내 진입을 통해 일본 정부 기관 파괴와 군자금 모금 등을 임무로 하였다. 이들은 군자금 모집 활동, 치안교란을 목적으로 한 무장투쟁이나 국내와의 연결 기관 설치를 목적으로 수차례에 걸쳐 국내로 대원을 파견하였다. 1933년 2월 초순 변낙규(邊洛奎)·박봉수(朴鳳洙)·김윤근(金允根) 등과 함께 평안북도으로 진입하여 활동하였다. 20여 명의 대원들과 함께 평북 벽동(碧潼)·덕천(德川) 등지에서 부호들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고자 하였다. 3월경에는 창성군(昌城郡) 대유동(大楡洞)의 금광을 공격하여 군자금을 마련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조사대원으로 금광 부근을 정찰하였다. 3월 29일 변낙규·박봉수 등과 함께 삭주군(朔州郡)에 거주하고 있는 이봉주(李鳳柱)로부터 군자금 42원을 징수하였다. 4월 24일에는 영변(寧邊) 산중에서 위조지폐를 발행하여 무기를 구입하려고 계획하던 중 일본 경찰에게 붙잡혀 신의주 평북경찰부로 압송되었다.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 등으로 징역 5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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