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贊斗
贊斗1885 ~ 1920. 11. 2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독립단
포상 정보
- · 애국장(1998)
관련 사건
- · 간도참변(경신참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8) 1885년 평안북도 벽동군(碧潼郡) 서부면(西部面) 신리동(新里洞)에서 출생하였다. 자료의 한계 상 가족 관계와 도만(渡滿) 경위는 자세히 알 수 없다. 1920년경에는 서간도(西間島)의 콴덴현(寬甸縣) 관문립자(關門砬子) 쌍서동(双西洞)에 거주하였다. 1920년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콴덴지단(寬甸支團)의 재무장(財務長)으로 활동하였다. 대한독립단은 1919년 4월 15일 류허현(柳河縣) 삼원포(三源浦) 서구(西溝) 대화사(大花斜)에서 성립되었다. 국내에서 의병활동을 펼치다 망명한 인사들이 1919년 만세운동의 열기를 이어 본격적인 항일 무장활동을 전개하기 위해 성립시킨 독립군단(獨立軍團)이었다. 중앙 조직의 경우 도총재(都總裁) 박장호(朴長浩), 부총재 백삼규(白三奎), 총단장 조맹선(趙孟善) 등이 선임되고, 그 아래 총무·재무·사법·교통·선전 등의 부서들이 편성되었다. 그리고 남만주의 콴덴·싱징(興京)·지안(輯安)·환런현(桓仁縣) 등에 만주지단을 설치하고, 국내의 평안도와 황해도 등에는 국내지단을 설치하였다. 지단 재무장의 주된 임무는 파견된 독립군 대원과 함께 군자금을 모집하거나 관할지역의 한인들에게 독립 의무금을 징수해 중앙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1919년 만세운동 후 대한독립단 이외에도 서북간도지역에는 수십 개의 독립군단이 조직되었다. 이들 독립군단 소속의 독립군들은 전열이 정비된 즉시 유격대를 구성해 국내진입전을 실시하였다. 국내로 진입한 독립군 유격대원들은 일제 침략 기관을 기습 공격해 파괴하고, 착취와 탄압을 자행하는 일제의 관공리들을 처단하였다. 독립군의 공격에 상당한 피해를 입게 된 일제는 1920년 10월 약 2만 명에 이르는 대병력을 독립군의 근거지가 되는 서북간도를 향해 침입시켰다. 이들 침략군들은 이듬해 4월까지 6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독립군기지와 독립군을 비롯하여 이주한인사회 자체를 철저하게 파괴하는 이른바 경신참변을 자행하였다. 대한독립단의 본부와 만주지단이 설치된 서간도를 향해 들어 온 병력은 북만주 철령(鐵嶺)에 파견돼 있던 일본군 보병 제 19연대와 공주령(公主嶺)에 주둔하고 있던 기병 제20연대였다. 이들 두 부대는 침략자 일제 못지않게 동포를 괴롭히는 친일집단 보민회(保民會) 회원들을 앞장세워 철저하게 독립군과 반일 한인들을 색출해 살해하였다. 미처 피신하지 못하고 쌍서동 자신의 집에 머물러 있다가 이들에 의해 1920년 11월 28일 동지들과 함께 붙잡혔다. 그리고 콴덴현 홍동구(紅洞溝)까지 끌려가 다음날인 11월 29일 모두 함께 총을 맞고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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