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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화

金振華

1897 ~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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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진화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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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선천(宣川)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선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 · 의군부(義軍府)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선천 및 평양 군자금모금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7년 평안북도 선천(宣川)에서 태어났다. 강원도 출생으로 나오는 자료도 있으나 이는 일제가 체포한 독립군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아직 체포하지 못한 독립군의 명단과 이력을 구술하도록 해 작성한, 개인의 기억력에 의존한 것이다. 따라서 일제가 첩보에 의해 남만주(南滿洲) 콴뎬현(寬甸縣)지방에 거주하는 독립군을 조사한 문서에 따랐다. 이명은 김윤우(金允友)다. 도만(渡滿) 경위는 자료의 한계로 알기 어려우나 1919년 하반기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대한독립단은 1919년 4월 15일 남만주 류허현(柳河縣) 서구(西溝) 대화사(大花斜)에서 성립된 독립군단(獨立軍團)이었다. 체계적 조직을 갖춘 독립군단으로는 남만주 최초의 군단으로 평가받으며, 박장호(朴長浩)·조맹선(趙孟善)·전덕원(全德元) 등 의병계열의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성립시켰다. 대한독립단의 단원으로 1919년 7월 백운한(白雲翰)·함일(咸一)·이명서(李明瑞) 등과 유격대를 결성해 국내로 진입하였다. 선천(宣川)에서 군자금을 모집해 일부 대원은 귀대하고, 해를 넘긴 1920년 1월 10일 백운한·김정백(金正白) 등 6명과 조를 구성해 평양으로 들어갔다. 유격대는 평양 서관동(敍貫洞)에 위치한 박관선(朴寬善)의 집에 활동 근거지를 마련하고 평양의 부호들에게 「내지자산가제씨(內地資産家諸氏)에 고(告)함」이라는 제목으로 된 격문을 배포하며 군자금 모집을 위한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은 짧은 시간에 일경의 감시망에 포착되어, 1월 14일 김정백·고응신(高應信)·박관선 등 3명은 붙잡히고 나머지 4명은 추격을 따돌리고 만주의 본부로 귀대하였다. 귀대 후에는 대한독립단 단원 중 용맹하고 민첩한 단원들로 암살대를 구성한 뒤 지휘관으로 활동하였다. 1923년에는 통합 독립운동 단체인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에서 분리하여 성립된 대한의군부(大韓義軍府)의 군무부(軍務部) 소속 대원으로 활동하였다. 통의부는 경신참변(庚申慘變) 후 흐트러진 남만주 독립운동 진영을 정비하기 위해 1922년 8월 대한독립단·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 등 17개 독립운동체가 통합해 성립된 단체였다. 그런데 각 단체가 기존에 가졌던 이념과 노선을 모두 무시하기로 합의하고 통합된 통의부였지만, 얼마 후 복벽주의(復辟主義) 계열과 공화주의(共和主義) 계열 간에 충돌이 일어나고 말았다. 그 결과 복벽주의 계열의 인사들이 1923년 초 이탈하여 의군부를 성립시켰다. 이 과정이 있었기에 자료로는 확인이 안 되고 있으나 의군부 이전 통의부에서도 활동했을 것으로 보인다. 재만 독립군으로 이 같은 활동을 펼치다 1924년 후반 의군부 검무감(檢務監)직을 수행하던 중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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