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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振烈

振

1869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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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振烈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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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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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광정단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1) 충청북도 출신인 것만 확인된다. 1884년생으로 기록된 자료도 있으나 출신지와 함께 표기된 자료에 의해 1869년으로 판단된다. 가족관계와 성장과정은 자료의 한계 상 알기 어렵다. 만주로 이주한 경위도 확인되지 않으나 1920년대 초부터 남만주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1924년경 광정단(光正團) 위생부장으로 활동하였다. 광정단은 1922년 초 창바이현(長白縣)에 본단(本團) 또는 지단(支團)을 둔 흥업단(興業團)·태극단(太極團)·대진단(大震團)과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 일부를 통합시켜 성립된 통합독립군단이었다. 단장은 윤덕보(尹德甫), 부단장은 강건(姜健)이었다. 그 밑으로 재무·군사·서무·경호·의사(議事)·권업·문화·통신·회계·위생 등이 편성되었다. 흥업단·태극단 등 이들 4개 독립군단들은 1920년대 초 국경 지방인 창바이현에 근거지를 구축하고 활발한 무장활동을 전개하였다. 따라서 이 군단들이 통합해 성립된 광정단은 험난한 계곡으로 이루어진 창바이현 곳곳에 독립군 파견대를 설치하고 국내진입전을 비롯한 항일무장활동을 수행하였다. 지휘부인 총부가 위치한 창바이현 17도구(道溝) 동평덕리(東坪德里)에 설치된 위생부는 무장활동을 수행하는 독립군의 건강을 관리하는 부서였다. 1924년 중후반에는 광정단 수하에 8명의 부원을 거느린 외교부장직을 맡았다. 외교부는 중국의 군(軍) 또는 관(官)측과의 교섭이 주된 업무였으나 군사부 소속의 독립군들과 협력해 무장활동도 수행하였다. 광정단은 1924년 11월 24일 통의부(統義府)·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의성단(義成團) 등 7개의 독립군단들과 통합해 하얼빈(哈爾濱) 이남 전남만주를 관할 지역으로 해 항일활동을 펼친 정의부(正義府)를 성립시켰다. 이후 행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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