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성
金振聲1914. 4. 16 ~ 1961. 7. 31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국민부
포상 정보
- · 독립장(196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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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장(1968) 1914년 4월 16일 황해도 곡산군(谷山郡) 상도면(上圖面) 희엽리(希葉里)에서 출생하였다. 이명은 왕운기(王雲起), 김택기(金澤基)이다. 조부는 1919년 평안북도 초산(楚山)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감옥에서 사망하였다. 1920년 부친 김정일(金正一)을 따라 남만주(南滿洲) 류허현(柳河縣)으로 이주하였다. 만주로 망명한 후 부친 또한 항일운동을 이어가다 투옥되기도 하였고, 형도 재만 독립군 지휘관 최석순(崔碩淳)의 부하가 되어 국내 진공작전을 전개하던 중 부상을 입고 일제에 붙잡혀 옥고를 겪는 등 집안이 모두 항일투쟁에 헌신하였다. 류허현에서 설립된 민족학교인 동창학교(東昌學校)를 졸업하였다. 1932년 6월 19세의 나이에 통합 독립운동단체인 국민부(國民府)에 가입하였다. 국민부는 1929년 4월 1일 민족유일당(民族唯一黨)운동의 일환으로 만주에서 성립된 통합 독립운동단체이다. 이 단체는 산하에 이념과 무장활동을 실천할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과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을 조직해 1930년대 이후 남만주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국민부 제2중대 소속의 참사(參士)에 임명되어 1934년 중반부터 김창화(金昌化)·김병하(金炳河)·강성채(姜成彩) 등 6명의 동지와 지안현(輯安縣) 외차구(外岔溝)에 파견되었다. 압록강과 접해있는 지안현은 국내로 진입하기 위한 독립군의 주요 통로였다. 국민부 지휘부는 이 지역에 독립군들을 파견해 안전한 진입로를 확보하고자 노력하였고, 일제 또한 독립군을 사전에 차단하고자 군경대(軍警隊)와 밀정들을 수시로 투입시켰다. 국민부 파견대의 일원이 되어 지안현을 무대로 활동하던 중, 1934년 7월(음)경 밀정 김용환(金龍奐)을 처단하고 외차구에 있는 동포 김택규(金擇奎)의 집에 피신해 있다가 초산경찰대에 붙잡혔다. 위원군(渭原郡) 소속의 순사였던 김용환은 사직하고 만주로 건너와 밀정이 되어 독립군의 정황을 파악해 일제에 보고하는 한편, 이주 한인들을 선동해 독립군의 지원 활동을 막는 친일파였다. 1935년 7월 5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무기징역을 받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9월 1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경성형무소에 갇히게 되었다. 1940년 8월 징역 20년으로 감형되었으나 광복될 때까지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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