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俊弼
俊弼1902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국민부(國民府)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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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5) 1933년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1902년 평안남도 덕천군(德川郡) 태극면(太極面) 송산리(松山里)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출생시기와 언제 만주지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는지는 사료를 통해서는 파악하기 힘들다. 만주지역에서 국민부(國民府)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에 진력하였다. 국민부는 1929년 4월 1일에 조직되었다. 1928년 9월부터 11월 사이에 있었던 3부 통일회의가 자체 내분으로 결렬되어 실효를 거두지 못하자, 같은 이념을 가진 사람들끼리 국민부를 이루었다. 참의부의 심용준파(沈龍俊派) 신민부 일부 인사들이 연합하여 조직한 국민부는 정의부 체제를 계승한 자치정부임을 헌장을 통해 밝혔다. 설립 다음 달인 5월 28일에는 중앙집행위원회를 구성하고 중앙집행위원회 위원을 결정하였다. 같은 해 12월 경 조선혁명군이 설립되면서 국민부·조선혁명당·조선혁명군 세 기관이 구성되었다. 조선혁명당은 정치기구인 국민부와 독립군 전투부대인 조선혁명군의 운영을 이끌어 나가는 중심이었다. 이때 국민부 소속으로 활동하다가 이후 조선혁명군에서 무장투쟁에 참여하였다. 조선혁명군은 설립 초기에 중국군과 여러 차례 연합작전을 통해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승전을 거두었으나, 이후 적의 숫자가 증원되고 만주사변이 일어나면서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특히 군자금의 부족으로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국내로 잠입하여 군자금을 모금하는 일이 부원들의 주요 임무 중 하나였다. 1932년 8월 변낙규(邊洛奎)와 함께 군자금 모집과 반일투쟁을 목적으로 국내로 침투하였다. 이들은 평안남도 벽동군(碧潼郡)과 고향인 덕천군 일대에서 부호들에게서 군자금을 모금하고 무기를 수집하였다. 같은 해 12월 23일에는 김일봉(金一鳳)의 집에서 장인준(張仁濬)·유영규(劉泳奎)·최모 등과 같이 비밀조직을 결성하였다. 변낙규가 총사령이고, 유영규는 동지 규합을 책임지며, 장인준은 모험대원과 회계책임자를 맡았다. 1933년 2월 4일 대원들과 덕천군 덕광면 귀성리 왕택준(王澤俊) 집에서 군자금 110원을 모금하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덕천경찰서는 즉시 대대적인 수색활동을 개시하여 독립군의 행방을 수색하는 한편, 평북경찰부와 연락을 취하여 수사망을 좁혀 왔다. 2월 7일 오전 영변군 백령면 용연동 개량서숙에서 교원으로 활동하던 장인준과 김일봉이 체포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영규·유운규 등과 같이 일제 경찰에게 붙잡혔다. 이로 인해 1933년 5월 19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 등으로 징역 5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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