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俊汝
俊汝1887 ~ 1920. 11. 22
관련 단체
- · 의군단(義軍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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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1887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출신지와 어렸을 때의 행적, 언제 만주로 망명하였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망명 후 만주지역의 훈춘현(琿春縣) 남양동(南良洞) 일대에 거주하였다. 1910년 8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면서 많은 사람들이 만주로 이주하여 삶의 터전을 가꿔나갔다. 한인들은 모여 살며 사회를 이루었고, 여러 애국지사들은 이러한 한인사회를 기반으로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독립군을 양성하는 등 독립운동을 계속해 나갔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독립운동에 투신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의군부(義軍府) 또는 의군산포대(義軍山砲隊)로도 불리는 의군단(義軍團)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의군단은 북간도지역으로 이주한 한말 의병 출신들을 중심으로 1919년 4월 왕칭현(汪淸縣) 초모정자(草帽頂子)에서 설립된 단체였다. 총재는 이범윤(李範允)이었으며, 김현규(金鉉圭)·최우익(崔友翼)·진학신(秦學新) 등이 중심이 되었다. 의군단은 6개 대대로 조직되었고, 주로 만주지역에서 친일파 처단과 일본군에 대한 기습활동을 하였다. 정확한 활약상은 확인되지 않으나 일제를 상대로 무장투쟁을 전개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의군단원의 활동과 더불어 당시 만주지역에서는 1919년 만세운동 이후로 조직된 여러 독립운동단체들에 의해 무장투쟁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상황이었다. 특히 여러 독립군단체의 연합으로 1920년 10월 청산리전투에서 독립군세력이 일본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면서 간도지역 독립운동세력이 일제의 탄압 대상이 되었다. 이에 일본군은 일찍이 ‘간도지역불령선인초토계획’을 세웠고, 중국 마적들을 매수하여 ‘훈춘사건’을 조작하여 간도로 대규모의 병력을 출병시켜 한인 마을에 방화하고 살인을 일삼았다. 의군단 소속으로 활동하던 중 거주지인 훈춘에 일본군이 진입할 때 교전하였다. 교전 중에 1920년 11월 22일 남양동에서 전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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