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俊彦
俊彦1894 ~ 1922. 11. 1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천마산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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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평안북도 희천군(熙川郡) 북면(北面) 명문동(明文洞)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94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보통학교에서 공부하였으며, 어려서부터 본성이 활발하고 지기(志氣)가 견고하였다고 한다. 경술국치 이후 조선총독부는 각 분야에서 폭력적인 억압과 수탈을 자행하는 무단통치를 실시하였다. 무자비한 탄압 속에서도 국내외의 민족운동은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다. 1919년 만세운동은 국내는 물론 한인이 거주하던 만주·미주·러시아 등지로까지 확산되었다. 만세운동 당시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하던 중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어 신의주감옥에서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마음먹고 천마산대(天摩山隊)에 가입하였다. 천마별영(天摩別營) 혹은 철마별영(鐵馬別營)으로도 불리는 천마산대는 1919년 만세운동 직후 대한제국 시기 군인들을 중심으로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 고령삭면(古寧朔面)의 천마산(天摩山)에서 조직된 무장투쟁단체였다. 대장은 최시흥(崔時興)이었고, 대원으로 최지풍(崔志豊)·김세진(金世鎭)·심용준(沈龍俊)·양봉제(梁鳳濟) 등 500여 명이 소속되어 있었다. 주로 군자금 모집, 일제 식민지 통치기관 공격, 일본 군경과 친일분자 처단, 일본군과 교전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무기는 재래식 무기인 화승총과 적에게서 빼앗은 것으로 무장하였다. 천마산대 가입 후 부사(副士)로 활약하며 수차례 일본 헌병대를 습격하였다. 1922년 6월 경에는 허신호(許信浩)·김준원(金俊源) 등과 같이 희천군의 동창경찰관주재소(東倉警察官駐在所)를 습격하였다. 그러던 중 같은 해 11월 13일에 평북 위원군(渭原郡) 위원면(渭原面) 만호동(萬戶洞)에서 일본 경찰 10여 명과 교전하다가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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