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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鍾憲

鍾憲

1867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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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鍾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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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만주방면

관련 단체

  • · 의군부(義軍府)
  • · 의민단(義民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9) 1867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출생시기나 출신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또한 만주지역으로 이주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한 시기도 알 수 없다. 망명 후 북간도의 왕칭현(汪清縣) 일대에 정착하였다. 초기에는 의군부(義軍府)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이후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이 활발해지자 만주에서도 여러 독립운동단체가 조직되어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의군부는 1919년 4월 이범윤(李範允)·김현규(金鉉圭) 등이 설립한 단체로 의군산포대(義軍山砲隊)라고도 불렸다. 초기에는 왕칭현의 초모정자(草帽頂子)에 근거지를 두었다. 이 때 의군부 산하 의군전위대(義軍前衛隊)에서 재무부장으로 단체의 재무를 담당하고,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이듬해 4월 경 왕칭현 춘화향(春華鄕) 가야하(嘎呀河)에서 허은(許垠)·김연군(金演君)·방우룡(方雨龍) 등과 같이 의민단(義民團)을 조직하여 참모장으로 활동하였다. 약 300여 명의 대원들로 구성된 의민단의 성원은 천주교인들과 의병 출신이 중심이었고, 단장은 방우룡(方雨龍)이었다. 재정은 천주교인들의 후원으로 인해 다른 단체에 비하여 넉넉하였다. 같은 해 6월 이후에는 국민회·북로군정서·광복단 등 독립운동단체와 같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파견한 안정근(安定根)·왕삼덕(王三德)의 조정으로 연합활동에 대해 논의하였다. 그러나 광범위한 지역에 산재해 있는 독립군 단체를 하나로 통일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여러 지역별로 통합하는 방안이 강구되었다. 10월 중순쯤 일본군의 간도침략 소식을 접한 각 단체들은 ‘대표자회의’를 열어 홍범도를 사령관으로 하는 연합부대를 조직하여 청산리대첩에 참여하였고, 이후에 북만주로 이동하였다. 의민단은 추후 영고탑(寧古塔)에 근거지를 두고 활동하였는데, 1922년 8월에는 독립군단 통합운동에 가담하여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으로 통합되었다. 당시 본부의 임원으로 활동하였으나, 그 후의 행적이나 사망시기는 자료상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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