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빈
金正彬1868. 10. 23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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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6) 1868년 10월 23일 경상남도 창원군(昌原郡) 내서면(內西面) 산호리(山湖里)에서 태어났다. 1915년 활동 당시 주소지는 서울 돈의동(敦義洞)이었다. 일찍부터 일제의 강제병합에 분개하던 중, 1915년 (음)6월경부터 서울의 자택, 익선동(益善洞) 차진원(車鎭源)의 집, 도렴동(都染洞) 이강래(李康來)의 집 등에서 이강래·이승호(李承鎬)·남정호(南廷鎬)·유연건(柳淵建)·신언학(申彦學)·이승직(李承稷) 등과 여러 차례 회합을 가지면서 구한국(舊韓國)의 국권회복운동을 모색하였다. 이들은 “중화민국 총통 위안 스카이(袁世凱)가 구한국 공사(公使)였던 시대에 그 알선에 의해 당시의 중국 육군장관 마젠충(馬建忠)이 은 26만냥을 이태왕(李太王)(고종)으로부터 대여하여 그 내용의 증서를 이태왕에게 차입(差入)하였다.” 라는 것을 듣고서 의친왕 이강(李堈)을 통해 고종으로부터 이 증서를 건네받아 이를 가지고 위안스카이에게 교섭하여 독립운동자금에 충당할 것을 계획하였다. 또한 동지들을 모아서 간도(間島)의 비옥한 땅으로 이주하여 ‘건북유한공사(建北有韓公司)’라는 비밀단체를 조직하여 신한국(新韓國) 건설의 기초를 마련한 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만국평화회의(萬國平和會議)가 개최될 것에 대비하여 위안스카이에게 한국의 독립을 제의하게 함으로써 국권을 회복시키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이를 추진하였다. 이후 그 해 (음)8~9월경까지 동지를 모집하기 위하여 고종과 의친왕 명의의 위조인(僞造印)을 만들어 「성명서」, 「위임장」, 「유시문(諭示文)」 등을 제작하였다. 이 서류들을 각자가 지니고 서울을 비롯해 경상도, 황해도 등지를 돌아다니면서 유세(遊說)를 하였다. 이와 같이 활동하다가 1916년 4월 11일 동지들과 함께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1916년 8월 30일 예심(豫審)이 종결되어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그 해 10월 2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미결구류 60일 통산)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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