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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점쇠

金点釗

1902. 10. 23 ~ 1921.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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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점쇠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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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全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전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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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6)

관련 사건

  • · 전주군 전주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6) 1902년 10월 23일 전라북도 전주군(全州郡) 전주면(全州面) 대화정(大和町, 현 전주시 완산구 전동 일대)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기독교 계열의 학교인 신흥학교(新興學校) 학생이었다. 전주 지역에서의 독립만세 시위는 기독교 계열의 신흥학교와 기전여학교(紀全女學校)의 교직원들과 학생들이 주축이 되었다. 이들은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준비하여 전주 천도교 교구실의 배상근(裵祥根)과 김진옥(金振玉) 등에게 전달하였고, 교구실의 등사판으로 대량 인쇄하였다. 1919년 3월 13일 전주면 장날에 모인 군중들은 만세를 부르며 행진하였고, 이튿날에도 시위가 이어졌다. 이날 신흥학교의 학생 박상선(朴尙鮮)·김봉호(金鳳昊) 등과 완산교(完山橋) 부근에서 시위 군중과 합류해 본정(本町)의 전주우편국까지 행진하며 ‘독립 만세’를 부르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6월 24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그 해 7월 2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같은 해 10월 9일 고등법원에서도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다 1920년 4월 28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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