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신
金允信1880. 9. 15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관련 사건
- · 횡성군 횡성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8) 1880년 9월 15일 강원도 인제군(麟蹄郡) 서화면(瑞和面) 천도리(天桃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김사윤(金四閏)이다. 1919년 당시 목면(木綿) 행상을 하며 살았다. 4월 1일 인제군 횡성면에서 거행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전국적으로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강원도 횡성에서는 천도교인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이 준비되었다. 횡성 천도교 대교구장 최종하(崔宗河)를 비롯하여 도훈(道訓) 이채일(李采一) 등이 시위를 준비하였다. 횡성의 첫 시위는 3월 27일 횡성 장날이었다. 모든 상점이 철시한 가운데 300명 가량이 장터에 모여 독립만세를 외쳤으나, 원주에서 미리 출동한 일제 기마병에 의해 제압당하였다. 횡성에서는 만세운동에 대한 조선 총독의 ‘유시문’을 찢어버린 사건 등으로 일제 경찰의 경계가 삼엄하게 지속되고 있었다. 천도교 측은 3월 27일 횡성 장날 만세운동의 실패를 거울삼아 감리교와 청년 측에 미리 연락하고 조직을 꾸리면서, 다음 장날인 4월 1일에 있을 새로운 시위를 준비하였다. 일제 관헌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파악하고 주요 관공서에 대한 습격에 대비하여 중요 서류를 미리 숨기고, 횡성군수 심상준(沈相俊)과 횡성면장 김석환(金錫煥) 등이 비상대기 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거사 당일인 4월 1일 오후 3시경이 되자 정해경(鄭海璟)이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때 김성서(金聖西)·김원배(金元培)·조상렬(趙常烈)과 함께 정해경의 선창에 뒤따라 독립만세를 외치며 주변의 호응을 불러 일으켰다. 이들의 만세소리에 횡성시장에 모여 있던 1,300여 명의 군중은 일제히 독립만세를 외치며 장터를 누비기 시작하였다. 관공서 앞 게시판, 군청 건물 일부, 철시하지 않은 상점 등을 파괴하였다. 시위대는 시위를 해산시키러 온 일제 기마 헌병까지 공격하였다. 그러자 헌병이 총을 쏘며 시위대를 겁박하였다. 헌병의 무력 탄압에도 시위는 밤까지 이어졌다. 헌병분견소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고 날이 밝을 때까지 총성이 지속되었다. 야간 시위로 5명이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일제 헌병은 시신을 면사무소에 갖다 놓았고, 주민들은 시신을 둘러메고 동리로 돌아가거나 더 격한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5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항소를 제기하였으나, 그 해 7월 1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임광순⋮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