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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遠植

遠植

1885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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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遠植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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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충주(忠州)임시정부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충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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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인국민회
  • · 대한군정서
  • · 대종교

포상 정보

  • · 애족장(201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4) 충청북도 충주(忠州)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85년생으로 판단된다. 이후 러시아로 넘어가 활동하였다. 1914년 12월 14일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치타(Chita)지방회 설치와 『대한정교보(大韓正敎報)』 발행 등의 활동 혐의로 이강(李剛)·정재관(鄭在寬)·고성삼(高成三)·김택(金澤) 등 7명이 러시아 헌병대에 붙잡혔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로 러시아와 일본이 동맹국이 되자 반일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한 것이다. 당시 니코리스크시에 있던 이갑(李甲)은 이들의 구인 사실을 통지받은 후, 12월 18일 치타 거주 한인 두세 명에게 이 소식을 알리고 석방에 힘써주길 부탁하였다. 이때 러시아 측과의 교섭을 맡아 한인 석방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이후 중국 관내지역으로 넘어와 1920년 2월부터 3월에 걸쳐 열린 임시의정원 제7회 회의에서 충청도 선출 신도(新到)의원으로 자격심사를 거친 뒤, 3월 19일 제5과(교통) 상임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같은 해 4월 9일 임시정부 내무부 참사(參事)로 임명되었다. 1921년 2월부터 5월에 걸쳐 열린 임시의정원 제8회 회의에 홍진(洪鎭)·신현창(申鉉彰)과 함께 충청도 선출 의원으로 활동하였다. 특히 5월 3일 윤기섭 등 13명의 의원과 함께 “임시의정원은 임시대통령과 국무원으로 하여금 각 문무관원을 1주일 이내에 정선 임면하고 책임상 희생적 결심 하에 더욱 독려 결속하여 급속 정돈케 하기를 결의함”이라는 ‘정부촉성제의안’을 제출하여 통과시켜, 국무총리 이동휘 사임 직후의 임시정부의 정상화에 힘을 쏟았다. 같은 해 9월부터 10월에 걸쳐 열린 제9회 임시의정원 회의에도 임시의정원으로 참석하였다. 상임위원회 제7과(청원징계) 위원으로 윤기섭(尹琦燮)·조완구(趙琬九) 등과 함께 청원과 징계를 맡았다. 나아가 태평양회의에 전권대표와 부대표로 이승만과 서재필을 선출하였다. 나아가 같은 해 11월 임시의정원 의원 자격으로 태평양회의에 발송하는 독립청원서에 서명하였다. 1922년 열린 제10회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2월 11일 사면청원으로 의원을 사임한 뒤, 만주로 활동 근거지를 옮겼다.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할 시기에 상하이 대한교민단(大韓僑民團)에도 관여하였다. 대한교민단의 일원으로 1921년 11월 2일 오후 2시부터 상하이 거류 한인동포 약 300여 명과 함께 공공조계(公共租界) 시창로(西藏路) 닝보회관(寧波會館)에서 개천절경축회(開天節慶祝會)를 거행한 것이다. 개천절 행사를 준비하고 경축회에서 신가(神歌)를 독창하는 등 대한교민단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923년 하얼빈(哈爾濱)으로 건너가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에 가담하였다. 대한군정서는 1919년 북간도에서 서일(徐一) 등의 대종교 신도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항일 무장단체이다. 대한군정서(북로군정서) 총재 서일은 약 1만여 명의 교도를 통솔하며 북간도 일원에서 맹위를 떨쳤다. 1920년 10월 청산리대첩 등 여러 차례 일본군과 교전하여 승전을 거둔 뒤 밀산 방면으로 이동하였다. 이 과정에서 대한군정서 요인들이 각지로 흩어졌는데, 대종교 도사교(大倧敎, 道司敎) 김교헌(金敎獻)은 대종교의 교세 회복과 부흥을 위해 영고탑(寧古塔)으로 본부 이전과 사무 개시를 발표하였다. 각지로 흩어져 활동하던 대한군정서 간부와 대종교 지도자 등은 1923년 4월 영고탑에 모여 추후 교단의 진로와 투쟁 방침에 대한 회의를 열었다. 회의 결과 하얼빈으로 대종교 본부를 옮기고 활동 영역을 확대하기로 결정하였다. 표면적으로는 만몽산업회(滿蒙産業會)라 칭하여 일제의 단속을 피하며 교세 회복과 반일투쟁을 추진한 것이다. 대한군정서 간부로 영고탑회의에 참석하여 대종교의 부흥과 무장투쟁 부흥과 반일투쟁 발기인의 한 사람으로 참석하였다. 이후 행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양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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