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구
金應九1863 ~ 1910. 2. 1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김기순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16)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6) 전라북도 무장군(茂長郡) 장자산면(莊子山面) 춘산리(春山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863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다가 1908년 전라남도 영광군에서 김기순(金基順)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러일전쟁 이후 일제는 1904년 2월 23일 한일의정서를 강제로 체결한 이후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시도를 시작하였다. 8월 22일 제1차 한일협약을, 1905년 11월 17일 제2차 한일협약 즉,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다. 이로써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상실하고 통감부가 설치됨에 따라 내정간섭이 본격화되었다. 1907년에는 헤이그특사사건을 빌미로 광무황제가 강제퇴위를 당하고 한일신협약(韓日新協約, 정미7조약)이 체결되었으며, 대한제국의 군대가 강제해산 되면서 일제에 대한 전국적 의병 항전이 일어나게 되었다. 전라북도 지역은 1907년 이후 항일 의병투쟁이 가장 활발히 전개되었던 지역 중 하나로, 그 배경에는 노사 기정진(奇正鎭)과 면암 최익현(崔益鉉)의 학통이 있었다. 이 중 노사학파의 인물로 의병투쟁에 나섰던 기삼연(奇參衍)은 장성의병에 참여한 이후 계속해서 의병 운동에 전력을 다하였다. 1907년 후반 호남창의회맹소라는 의병부대를 조직하였고, 여기에 그의 지조를 흠모하는 전라도의 많은 청장년들이 모여들었다. 이후 호남의병을 대표하는 의병장이 모두 호남창의회맹소를 거쳤거나, 그의 뜻을 계승하여 창의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일제의 대대적인 탄압작전으로 1908년 1월 기삼연이 순창에서 체포되고, 2월 3일 광주에서 총살당하였다. 이후 다양한 계층에서 김태원(金泰元);(金準)·김율 형제, 김동신, 전해산, 심남일, 안규홍, 이석용, 문태서, 임창모, 황준성, 박도경, 양진여, 양윤숙, 이기손 등 새로운 의병장들이 등장하였다. 이러한 시기에 김기순 의병부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김기순은 1907년 10월 기삼연이 결성한 호남창의회맹소의 포대장(砲隊長)으로 활약하였고, 기삼연 의병장이 사망한 후에는 전해산 의병부대에서 활동을 계속하였다. 이후 전라남도 영광군을 중심으로 독립된 의병부대를 조직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기순 의병부대에 참가한 이후 1908년 (음)6월 14일 전라남도 영광군의 초산리(草山里) 고모(高某)의 집에 들어가서 “우리는 의병인 바 군수금(軍需金)이 필요하니 내놓아라. 불응하면 죽이겠다”라고 말하며 군자금을 요구하고 엽전 10냥을 모집하였다. 이처럼 의병활동을 전개하던 중 이른바 남한대토벌작전으로 호남 지역의 의병활동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게 되자, 1909년 11월 12일 무장순사주재소에 자수하였다. 이후 1910년 1월 19일 전주지부에서 재판을 받았고, 형법 대전 제593조 제1항의 기득재율(旣得財律)에 해당하지만, 자수하였다고 징역 2년 6월을 받아 옥고를 치르게 되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은 1910년 2월 17일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곽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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