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六行
金行1874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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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4) 1874년 경상북도 봉화군(奉化郡) 내성면(乃城面) 해저동(海底洞)에서 출생하였다. 판결문에는 1908년 당시 나이가 35세였고, 미곡상(米商)으로 기록되어 있다. 1907년 유승환(柳承煥)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경상북도 안동(安東), 봉화(奉化), 영양(英陽) 일대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904년 2월 23일 한일의정서 강제 체결, 8월 22일 제1차 한일협약에 이어, 1905년 11월 17일 이토 히로부미의 주도로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다. 이에 따라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상실하고 통감부가 설치되었고, 일본의 내정간섭이 본격화되었다. 1907년에는 헤이그특사사건을 빌미로 광무황제가 강제퇴위를 당하고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이 체결되었으며, 대한제국의 군대가 강제해산 당하면서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나게 되었다. 1907년 8월 6일 원주진위대의 봉기는 경상북도 북부지역의 의병 운동에서 하나의 전기가 되었다. 원주진위대는 민긍호(閔肯鎬) 의병부대와 김덕제(金德濟) 의병부대로 나뉘었는데, 이중 민긍호 의병부대는 이강년(李康秊) 의병부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들은 소백산 남쪽의 경상북도 북부지역을 망라하며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한편 그 이남에서는 일월산을 중심으로 활약하고 있었던 신돌석 의병부대 이외에도 영양의 김성운, 안동의 박인화, 청송의 강진선 등이 소규모 의병부대를 형성하여 일본에 대한 항전을 지속해가고 있었다. 유승환(柳承煥) 역시 1907년 당시 안동을 중심으로 의병활동을 전개했던 인물이다. 다만 그에 관한 자세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고, 당시 봉화와 영양 일원에서 활동하였다는 점을 미루어봤을 때 이곳에서 활약했던 것으로 알려진 유시연(柳時淵) 의병부대가 바로 이 유승환 의병부대로 추정된다. 1907년 10월 24일 봉화군 재산면(齊山面)에서 유승환 의병부대에 합류하였다. 동료 의병 30여 명과 함께 봉화군과 영양군 일대에서 적극적으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본군이 의병 탄압에 나선다는 소식을 접한 후, 11월 4일 의병부대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왔다. 당시 일본군은 보병 제14연대 및 보병 제47연대가 주축이 되어 대대적인 의병 탄압작전을 실시하였다. 이로 인해 경상북도 의병의 활동 또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1908년 10월 자택에 거주하고 있다가 봉화분견소 소속 일본군에게 붙잡혔다. 이 일로 1908년 11월 2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폭동죄에 해당한다 하여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곽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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