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이
金完伊1881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이하현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관련 사건
- · 중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5) 1881년 경상북도 진보군(眞寶郡) 북면(北面) 병옥리(屛玉里, 현 영양군(英陽郡) 입암면(立巖面) 병옥리(屛玉里))에서 출생하였다. 집안 배경과 성장 과정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 없다. 1906년 경북 지역에서 활약했던 이하현(李夏鉉)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러일전쟁에 이은 을사늑약 강요로 대한제국의 국운은 백척간두에 섰다. 황현의 『매천야록』에는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경상북도 일대에서 의병이 일어나 모두 토왜(討倭)를 주장하였다고 전한다. 국가의 운명이 외세에 의해 좌우되는 위기를 맞아 전국에서는 의병이 일어나 일본의 침략에 저항하고자 하였다. 이중 소백산맥의 산악 지대를 중심으로 많은 의병들이 활약하였다. 경상북도에서는 1906년 1월 영양(英陽)에서 김도현(金道鉉)이, 1906년 4월 영천에서 정용기(鄭鏞基)가, 1906년 4월 영덕에서 신돌석(申乭石)이, 1906년 봄 경주에서 유시연(柳時淵) 등이 창의하여 일본에 저항하였다. 신돌석은 100명의 의병과 함께 ‘영릉의병장(寧陵義兵將)’라는 기치를 걸고 창의하였다. 1906년 4월 29일 영양읍을 점령하고 이어서 4월 30일에는 청송관아를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신돌석 부대에는 소모관 이창영(李昌英)을 비롯하여 조준용(趙俊容), 배선한(裵善翰), 윤학이(尹學伊), 신락선(申樂善) 등이 참여하여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고 알려졌다. 이들은 1907년까지 일월산을 근거로 일본에 저항했던, 당시 가장 유력했던 의병부대 중 하나였다. 이하현은 바로 신돌석 의병부대의 선봉장으로 활약했던 인물로, 영양군 석보면 지경리 출신이다. 본래 진보의병부대에서 활약하다가 신돌석의 창의에 호응하여 행동을 같이 하게 되었다. 1906년 3월부터 이하현 의병부대에 들어가 의병활동에 나섰다. 1906년 4월 24일까지 약 한달 반 동안 이하현의 지휘 아래서 30여 명의 동료 의병과 함께 경상북도 진보군과 영양군 등지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던 중 일본군에 붙잡혔다. 1909년 6월 9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형법대전 제677조와 제135조에 해당하는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3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그 해 7월 3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최종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곽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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