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翼鳳
翼鳳1891. 11. 17 ~ 1923. 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서로군정서
- · 대한통의부 의용군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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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1년 11월 17일 평안북도 벽동군(碧潼郡) 운시면(雲時面) 운하동(雲下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김익봉(金翊奉)이다. 부친(父親)은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소속으로 친일파 처단과 국내 일제 기관을 파괴하며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군 김만홍(金晩洪)이다. 벽동군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맞닿은 지역이어서 국경을 넘나들기 용이하였다. 때문에 벽동군 주민들 가운데 일제의 지배에 반발하여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이주한 사람들이 많았다. 게다가 일제가 이 지역의 치안이 불안하다고 하여 수비대를 파견할 정도로 벽동군은 독립군 부대가 국내에 진입하여 일본경찰과 빈번하게 전투를 벌인 곳이기도 하였다. 부친 김만홍은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에 가담하여 활동하였을 정도로 항일정신이 투철했던 인물로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1919년 만세운동을 계기로 군사력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아버지와 함께 만주로 건너가 서로군정서에 가입하였다. 서로군정서는 서간도 지역의 류허현(柳河縣) 고산자(孤山子)에서 조직된 군정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면서 1919년 11월 17일 명칭을 서로군정서로 개칭하고 군자금 모집과 무장투쟁, 선전활동에 주력한 독립운동 단체였다. 그는 서로군정서의 1중대 대원으로 활동하며 친일파 처단 및 일제 기관의 파괴 등 무장투쟁에 적극 가담하였다. 1920년 경신참변(庚申慘變)과 1921년 자유시참변을 겪으며 만주지역의 독립운동 단체들은 한동안 소강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따라서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독립운동 단체들이 연합하여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로 합쳐짐에 따라 대한통의부 의용군(義勇軍) 소속으로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1923년 1월 26일 독립군 7명과 함께 벽동군 대평면(大平面)에 잠입하여 일제의 밀정으로 활동하던 김관오(金棺伍)를 처단하였다. 또한 1923년 6월 19일에는 벽동군 대평면에 거주하는 친일파 김국필(金國弼)을 불러내어 총살하였다. 8월 13일 밤 김흥렬(金興烈)을 포함한 수십 명의 무장대원들과 함께 벽동군 우시면(雩時面) 우상리(雩上里)의 주재소를 습격하여 일경 1명을 사살하고 무기를 탈취한 뒤 주재소와 면사무소를 불태우는 등 친일파의 처단과 군자금 모집, 일제기관의 파괴 활동을 적극 전개하였다. 사건이 발생하자 평안북도 경찰부에서는 90명의 경찰대를 18개의 대(隊)로 편성하여 벽동군 일대를 대대적으로 수색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던 중 1923년 9월 벽동군 일본 수비대와의 교전 중에 총에 맞아 전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황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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