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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應元

應元

1896. 11. 15 ~ 1972.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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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應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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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영변(寧邊)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영변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대한광복군사령부(大韓光復軍司令部
  • · 광복군사령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6년 11월 15일 평안북도 영변군(寧邊郡) 읍내면(邑內面) 동부동(東部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에 참가한 후 국민회(國民會) 조직에 참여하였고, 평안북도 일대에 대한독립신문(大韓獨立新聞)을 배포하는 등의 활동을 펼쳤다. 또 상하이(上海) 대한민국 임시정부 연통제(聯通制)의 영변지구 책임자로도 활동하였다. 1920년에는 대한광복군사령부(大韓光復軍司令部)가 마련한 조선총독부와 일제 침략기관에 대한 파괴 계획에 참여하였다. 광복군사령부의 명령으로 김영철(金榮喆)·김최명(金最明)·김성탁(金聖鐸) 등과 미국 국회의원 시찰단이 내한하는 1920년 8월, 조선총독부와 일제 침략기관을 파괴하여 일본의 침략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포목상으로 가장하고 서울로 폭탄 2개와 권총 3정을 반입하였지만 미국 의원시찰단의 일정이 변경되고 일제 경찰에 발각되면서 거사는 좌절되었다. 만주로 탈출하여 항일활동을 지속하다가 1922년 중국 하이청현(海城縣)에서 붙잡혀 평북경찰부로 이송되었다. 이후 신의주형무소에서 5년간 옥고를 치렀다. 1972년 10월 7일, 서울 영등포구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남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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