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선
金應善1883. 1. 2 ~ 1944. 4. 3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문태수 의병부대
- · 정의단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83년 1월 2일 충청북도 옥천군(沃川郡) 이남면(伊南面) 강청리(江淸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김일산(金一山)이다. 『기려수필』에는 대전군(大田郡) 유천면(柳川面) 대성리(大成里)에 거주했다고도 기록되어 있다. 문태수 의병부대에서 활동하다가 만주로 망명하여 정의단(正義團)에서 활약하였다. 전라도 일대를 무대로 한 문태수(文泰洙) 의병부대에서 활동하다가 부대가 해산되자 만주 지안현(輯安縣)으로 건너가 정의단에 가입하였다. 상하이(上海)와 만주를 오가며 항일운동을 하던 중 창의단(倡義團) 단원인 전좌한(全佐漢)·계의산(桂義山)을 만나 1925년 정의단에서 파견한 6명과 함께 국내로 잠입하였다. 이때 전좌한, 계의산과 함께 조선총독부 경성부청의 신청사·조선신궁·조선은행·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고 조선의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포고문을 뿌리기로 계획하였다. 1925년 9월 초순, 충남 서천군(舒川郡) 서천면(舒川面) 지석리(支石里) 소재 수리조합에서 일하던 매부 정원득(鄭元得)으로부터 다이너마이트 10개, 뇌관 10개, 도화선 약 1장(丈) 5척(尺)을 건네받았다. 1925년 12월 초순까지 전북 금산군(錦山郡, 현 충남 금산군) 군북면(郡北面) 상곡리(上谷里)에 거주하는 이견국(李堅國)과 충북 옥천군 옥천면(沃川面) 삼양리(三陽里)에 사는 배석규(裵錫圭)의 집 등지에서 클로르산칼륨 5병, 놋그릇, 철분초자파편(鐵粉硝子破片) 등 재료를 수집하여 폭탄 6개를 제조하였다. 이후 충북 옥천군과 전북 금산군 근처에 위치한 진위(鎭威) 산중에서 1개로 폭발시험을 하였고, 나머지 5개는 서울로 운반하였다. 이후 1926년 1월 28일, 김운용(金云用)·정명옥(鄭明玉)·송암우(宋岩于)를 데리고 서울로 올라와 다음날 계의산과 함께 거사 장소를 답사하였다. 1월 30일에는 김운용·정명옥·송암우에게 주요 시설 폭파 계획을 알리고, 참여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1월 31일 새벽을 기해 자신은 조선은행을, 정명옥은 조선총독부 신청사, 김운용은 경성부청 신청사, 송암우는 종로경찰서, 계의산은 조선신궁에 폭탄 1개씩을 투척하고 포고문을 살포하기로 결정하였다. 하지만 경기도 경찰부에 탐지되어 실행에 옮겨지지 못하게 되었고, 청진동(淸進洞) 진일여관에 숨겨놓은 폭탄과 포고문도 발각되었다. 이어 일본경찰의 추격을 피해 펑티엔(奉天)으로 갔다가 붙잡혔다. 『기려수필』에 따르면, 전좌한과 계의산은 경기도 경찰부 고등과의 카와사키(河崎), 다나베(田邊) 경부의 밀정이었으며, 이들의 밀고로 계획이 실패했다고 한다. 1927년 8월 31일 경성지방법원 형사부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폭발물 취체 규칙 위반’으로 징역 4년을 받았다. 함께 재판을 받았던 전좌한은 징역 5년과 벌금 50원, 김운용·정명옥·송암우·김동준은 각각 징역 1년 6월, 정원득은 징역 4월, 정석조는 금고 3월을 선고받았다. 이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으며, 1944년 4월 30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남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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