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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允昇

允昇

1873. 9. 18 ~ 1930. 5. 7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允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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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북 종성(鍾城)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북도 종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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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73년 9월 18일 함경북도 종성군(鍾城郡) 남산면(南山面) 삼봉리(三峯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김윤신(金允信), 김윤승(金允承)이다. 1910년 대한제국이 강제로 일본에 병합당하자 북간도로 이주해 허룽현(和龍縣) 자동(子洞)에서 거주하였다. 1912년 김성래(金成來)와 함께 만주 허룽현 자동에서 정동학교(正東學校)를 설립하였다. 설립 당시의 명칭은 정동중소학교(正東中小學校)였으며, 교장에 취임하였다. 백유정, 진석호, 강익태(姜翼泰), 유한풍(兪漢豊)이 교사로 100여 명의 학생을 가르쳤다. 1918년 정동소학교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1919년 만세운동 이후 기독교학교로 전환되었다. 학교 운영의 경비 마련을 위해 김성래, 최병국, 이준홍 등과 함께 각각 1만원씩을 기부하고, 80칸(間) 크기의 교실을 지어 학생들을 가르쳤다. 정동학교 교장 재임 시 무관학교를 함께 운영하였고, 실행행동대(實行行動隊)를 조직하여 독립군을 양성하였다. 1920년 ‘경신참변(간도참변)’으로 정동학교가 소실되어 폐교되자, 소련 하바롭스코로 피신하였다가 임무를 띠고 간도로 돌아왔다. 훈춘(琿春)지방에서 활동 중 일본 경찰에게 붙잡혀 옥고를 치룬 후 정동소학교를 재건하였으며, 롱징(龍井)에 부유상점(富裕商店)을 열고 독립운동가들에게 일용품을 공급하는 등의 활동을 펼쳤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남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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