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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龍澤

龍澤

미상 ~ 192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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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龍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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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200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8) 출생 지역이나 인적 사항 등에 대한 내용은 확인되지 않는다. 1927년 5월 14일 이전 독립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중국 관헌에게 붙잡혀 사망하였다. 일제는 1920년 간도참변(경신참변)을 일으켰으나, 만주지역 독립운동세력의 항일 무장투쟁은 지속되었다. 이에 일제는 1925년 6월 조선총독부 경무국장 미쓰야 미야마쓰(三矢宮松)와 봉천성(奉天省) 경무처장 우진(于珍)의 협의 하에 이른바 미쓰야협정(三矢協定)을 체결함으로써 한인독립운동 세력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였다. 일제는 한인독립운동세력에 대한 탄압에 있어 중국당국의 협조를 받을 수 있게 됨으로써 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었고 중국당국으로서는 재만한인에 대한 실질적인 통제권을 확보함으로써 일본과의 외교적 마찰을 줄 일 수 있었다. 이후 중국 관헌들은 재만 한인이나 독립운동자들에 대한 불법감금과 불법체포·불법징세·소작권박탈·아동교육 방해 등을 자행하였다. 나아가 중국 관헌이 독립운동자를 붙잡아 경찰에 넘길 경우 일제는 상당액의 보상금을 지급하였다. 따라서 시기적으로 보아 미쓰야협정이 체결된 후 중국 관헌의 한인독립운동가들에 대한 탄압이 가속화되는 과정에서 희생당한 것으로 보인다. 1927년 5월 상황이 심각해지자 펑텐성(奉天省)과 지린성(吉林省), 헤이룽장성(黑龍江省)의 독립운동 세력은 ‘토죄봉성집안관공리문(討罪奉省輯安官公吏文)’을 발표하여 “우리 독립당(獨立黨)은 최소한 당신들을 방해하지 않았고 중국의 국권을 침해하지 않았으며, 추호도 당신들의 재산을 약탈하지 않았다. 우리는 단지 국가의 독립운동을 했을 뿐인데, 어찌 우리 독립당을 살해한단 말인가”라고 중국 당국을 비판하였다. 또한 국내 언론에서는 사망과 관련해 “중국 관원들이 상금을 타 먹으려고 그 머리를 일본 관서(官署)에 갖다 바친 것이며, 함께 순국 당한 동지는 고영신(高永信)·김기하(金起河)·황영내(黃永迺)·안봉선(安鳳) 등 도합 80여 명에 이른다”고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황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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