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玉明
玉明1869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광복군총영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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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5) 1869년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 수진면(水鎭面) 운천동(雲川洞)에서 태어났다. 대한광복군총영(大韓光復軍總營) 참리부장(參理部長) 조병준(趙秉準)의 권유로 국내에서 모집한 인원의 압록강 도강을 돕는 임무를 맡았다. 1920년 (음)12월경 조병준의 소개로 광복군총영 대원인 안해용(安海容)이 독립군 모집을 목적으로 국내로 진입하여 찾아오자, 국내에서 모집하는 대원들의 도강 방법을 의논하였다. 이후 귀국한 안해용은 1921년 (음)7월 중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枝川面) 신동(新洞)의 예수교회당에서 이덕생(李德生)과 이수건(李壽健)을 모집하였다. 1921년 8월중 안해용의 소개를 받고 찾아온 두 청년을 류허현(柳河縣) 등지로 건너 보냈다. 이를 눈치 챈 평안북도 소속 일본 경찰 2명이 1922년 12월 10일 새벽에 찾아와 안해용과 사용했던 암호 종이를 내보이며 자신들은 안해용이 보낸 사람들로 “그간의 공헌에 대한 상여금을 전달하라는 명령을 받고 왔다”고 하며, 계속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건너가는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해달라”고 부탁하자, “조선 사람으로서 독립운동에 가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하였다. 이로 인해 1922년 12월 20일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안해용과 함께 붙잡혔고, 1923년 1월 23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를 제기하였고, 같은 해 2월 28일 대구복심법원 형사제1부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징역 6월을 다시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조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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