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寧炫
金炫1907. 3. 29 ~ 1944. 3. 1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독립장(1986)
관련 사건
- · 간도영사관 습격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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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장(1986) 1907년 3월 29일 전라북도 옥구군(沃溝郡) 서수면(瑞穗面) 서수리(瑞穗里)에서 태어났다.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중국 지린성(吉林省) 옌지현(延吉縣) 롱징(龍井) 제1구였다.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홍문관박사(弘文館博士)를 지낸 맹의의 17세손이며 부친은 김용석(金容錫)이다. 향당서숙(鄕黨書塾)에서 수학하였고, 전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수원고등농림학교(水原高等農林學校)에 입학하였다. 입학 이후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계몽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으며, 3학년 때인 1928년 9월 다른 학생들에게 배일사상(排日思想)을 고취한다는 이유로 퇴학 처분을 당하였다. 이에 1928년 12월 만주로 망명하였으며, 지린성 둔화현(敦化縣)에서 독립운동에 가담하여 무기와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32년 7월 권총 및 기타 무기를 구입한 뒤 동지들과 합세하여 간도일본영사관을 습격하였다. 이때 전투 중 다리에 총상을 입고 일경에게 붙잡혀 국내로 압송되었다. 이 사건으로 1933년 12월 청진지방법원 예심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무기징역을 받고, 동(同) 법원에서 징역 15년이 확정되었다. 1933년 12월에는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고, 1943년 9월 경 다시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는 등 대전(大田)·마포(麻浦)·서대문(西大門)·함흥(咸興)형무소 등을 옮겨 다니며 힘겹게 옥에서 지냈다. 옥중에서도 확인된 것만 50여권의 책을 차입(差入)하여 읽는 등 독서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옥중 생활 12년 3개월 만인 1944년 3월 12일 함흥형무소에서 38세를 일기로 사망하였고, 옥구군 서수면 축동리(蹙東里) 보천동(寶泉洞)의 묘소에 안장되었다. 1946년 수원농고에서 명예졸업장을 수여하였으며, 1989년 묘비건립추진위원회가 결성되어 그 해 10월 묘비가 건립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6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황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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