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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玉連

玉連

1907. 9. 2 ~ 2005.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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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玉連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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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濟州)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제주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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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3) 1907년 9월 2일 태어났다. 전라남도 북제주군 구좌면(舊左面) 세화리(細花里)에서 해녀로 생업에 종사한 것으로 보아 이곳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본적은 전남 북제주군 구좌면 하도리(下道里) 1851번지이다. 1921년 설립된 하도보통학교 부설 야학인 하도강습소를 다녔다. 이곳에서 한글과 한문 기초교육, 역사, 『농민독본』, 『노동독본』 등 신지식 교육을 받으며 민족과 계급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해녀 노동의 가치에 대해 자각하고 민족의식을 갖게 되었다. 일제에 의해 어용화된 제주도해녀어업조합은 해녀들이 채취한 해산물을 불공평한 조건으로 매입하고 해녀들의 권익을 착취하며 무리하게 조합비를 징수하였다. 1931년 5월에는 어업조합에서 해녀들의 주요 소득원인 생전복과 감태에 대해 가격을 지정하고 등급을 내려 해녀들에게 큰 손해를 끼치는 등 경제 수탈이 심화되었다. 이러한 일제의 부당한 수탈에 저항하고자 같은 해 12월 20일 부춘화(夫春花)·부덕량(夫德良) 등과 함께 해녀들의 요구 조건과 투쟁 방침을 결의하였다. 이에 1932년 1월 7일 해녀 300여 명을 규합하여 하도리에서 세화 5일장까지 시위행진을 전개하였다. 해녀들의 요구 사항을 접수한 구좌면 해녀조합 지부장(구좌면장 겸임)이 제주도해녀조합장((濟州道司) 겸임) 다구치(田口)에게 건의하여 해결하겠다고 약속하였다. 1932년 1월 12일 다구치가 세화경찰관주재소를 방문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오조 해녀 300여 명, 하도 해녀 300여 명, 세화 해녀 40여 명, 총 700여 명을 규합하여 구좌읍 세화리의 연두막동산에 집결하여 약속 이행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호미와 비창(전복 따는 도구)을 휘두르며 세화 5일장까지 “우리들의 요구에 칼로써 대응하면 우리는 죽음으로써 대응한다”라고 외치며 항의시위를 주도하였다. 세화장터를 점령한 해녀들은 다구치 제주도사를 포위하고 해녀들의 요구 사항을 낭독하며 이행을 촉구하였다. 이 사건으로 일제 경찰은 1월 24일 시위 관계자 20여 명을 체포하였다. 해녀들의 체포 소식에 구좌면 해녀들이 격렬히 항의하다가 경찰과 충돌하였다. 이때 경찰관 1명이 부상당하고 경찰관의 옷이 찢어지는 등 몸싸움이 벌어져 해녀도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급보를 접한 전남 경찰부에서 목포응원경찰관 35명을 제주도로 급파하여 1월 26일 우도에 피신한 해녀 30여 명을 체포하자 다시 800여 명의 해녀들과 충돌하였다. 이때 부춘화·부덕량 등과 함께 붙잡혔다가 1932년 4월 22일경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박경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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