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도
金玉道1909. 4. 13 ~ 1989. 1. 28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도쿄금속노동조합
- · 전남운동협의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전남운동협의회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9년 4월 13일 전라남도 완도군(莞島郡) 고금면(古今面) 관산리(冠山里)에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풍악(楓岳)이다. 다만 행형 기록에는 1909년 4월 15일 출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928년 3월 완도군 고금면 조약도(助藥島)에 있는 사립 약산학교(藥山學校)를 졸업하였다. 곧바로 일본 도쿄(東京)로 건너가 여러 공장에서 직공으로 일하면서 노동운동에 참여하였다. 일본에 있던 1930년 4월경 철공소에서 일하던 신도(新藤)라는 자의 권유로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日本勞動組合全國協議會) 산하 도쿄금속노동조합(東京金屬勞動組合)에 가입하였다. 여기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하면서 노조 활동에 참여하였다. 이 금속노조의 동맹파업 때 선전 격문을 배포하였다고 한때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이후 귀국하여 농업에 종사하던 중 구체적인 위반내용은 알 수 없지만 1932년 1월경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長興支廳) 검사분국에서 이른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기소유예 되었다. 1932년 초순 황동윤(黃同允)·조동선(趙東善)·황상남(黃相南)·문승수(文升洙) 등과 회합하여 완도 농민운동 지도기관의 조직과 운동 방침에 대해 논의하였다. 그 결과 곧바로 조직을 결성하기에 앞서 우선 유력한 동지를 규합하는 일이 긴급하다고 결정하고 이에 주력하였다. 그 해 10월 15일경 최창규(崔昌珪)·이기홍(李基弘) 등과 모여 과거 선배 이현렬(李顯烈) 등이 주장한 공산주의 이론 연구에만 몰두하지 말고 전위 투사가 되어 실천 운동을 해야 한다고 보고 이에 주력할 것에 대해 협의·결정하였다. 이때 완도군 고금면 용지포(龍池浦) 간척지의 소작료 문제에 대해 일부 소작인들 사이에서 불평이 있으므로 각자 분담 구역을 설정하여 그 정황을 조사한 후 소작 쟁의를 일으키고, 이 과정에서 농민들을 훈련시켜 동지를 규합하는 데 노력하기로 결정하였다. 즉 간척지에서 일본인 지주의 일방적인 소작료 징수로 발생한 소작 쟁의를 항일 투쟁으로 발전시키는 데 주력하여 농민들을 단결시키고 항일의식을 고취시키려 했던 것이었다. 이러한 활동을 기반으로 1933년 5월 14일 해남군(海南郡) 북평면(北平面) 성도암(成道庵)에서 전남 일대 혁명적 농민조합운동의 지도기관인 전남운동협의회(全南運動協議會)라는 비밀결사가 조직될 수 있었다. 이 협의회가 결성된 후에는 여기에 참여하여 그 산하에서 활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전남운동협의회는 완도와 해남을 중심으로 장흥(長興)·강진(康津)·영암(靈巖) 등지와도 연계하여 활동한 조직이었다. 협의회는 전남지역의 농민·어민·노동자·지식인을 포함한 사회주의운동의 통일적 지도기관을 목적으로 하였다. 산하에 사무부·조직부·조사부·구원부(救援部)의 조직을 갖추고 기관지 『농민투쟁(農民鬪爭)』을 발간하는 등 활발히 활동하였다. 전남운동협의회는 ‘영농회사(營農會社)의 토지겸병 반대, 양반 및 기타 봉건사상과 지방열(地方熱) 배격, 소작료 감하 및 전정(全定) 요구, 면화·김(海苔) 등의 가격인상 요구, 호세(戶稅) 인하 요구, 간상(奸商) 배격’ 등 실제 농민의 경제생활과 밀접히 관련된 슬로건들을 내걸었다. 이와 같은 활동을 펴던 중 1934년 2월 전남운동협의회의 주요 간부가 일제 경찰에 붙잡히면서 조직이 와해되기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6개월 동안 전라남도경찰부 고등과(高等課)의 지휘로 강진·해남·완도·장흥·영암·목포(木浦)·보성(寶城)·진도(珍島)·순천(順川)·여수(麗水) 등 9개 군에서 혁명적 농민조합운동 관련자 등 558명이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당시 경찰은 이 사건 관련자만 3,000명에 달한다고 발표할 정도로 대규모 사건이었다. 이 전남운동협의회 사건에 연루되어 일제 경찰에 붙잡혀서 1934년 9월 8일 검찰로 송치되었다. 오랫동안 취조와 고문을 받고 1936년 12월 28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미결통산 365일)을 받았다. 목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37년 1월 6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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