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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남

金玉男

1910. 10. 17 ~ 1934.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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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옥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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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부안(扶安)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부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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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부안노동조합

포상 정보

  • · 애족장(2008)

관련 사건

  • · 전북공산당재건운동 부안노동조합협의회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8) 1910년 10월 17일 전라북도 부안군(扶安郡) 상서면(上西面) 통정리(通井里)에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김한술(金漢述)·김판룡(金判龍)이다. 부안에 있는 부서공립보통학교(扶西公立普通學校) 4학년 과정을 마치고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평소 사회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몇몇 사회 단체에도 참여하고 있었으며, 1930년대 전반기 부안에서 노동조합 조직운동을 전개하였다. 1932년 2월 21일경 백남철(白南哲)·박병득(朴丙得)·박예동(朴禮棟) 등과 함께 사회주의 연구를 기획하고 노동조합 조직을 위해 노동자를 규합하는데 노력할 것을 합의하였다. 이때 같은 부안에서 동일한 목적으로 또 다른 결사를 조직해 활동하고 있던 강희석(姜喜錫)의 제안에 따라 두 조직을 통합하기로 결정하였다. 같은 해 5월 9일 두 개의 결사를 해산하고 사회주의 연구와 노동자 규합을 위한 부안노동조합(扶安勞動組合)을 부활시키기 위한 하나의 결사를 조직하였다. 이 결사에서 임장수(林長壽)와 함께 조사·연락부를 맡아 활동하였다. 이 외의 부서로는 독서부에 박병득(朴炳得)과 신남근(辛南根), 경제부에 백남철, 조직·선전부에 박예동 등으로 책임자를 정하였다. 이들은 노동자의 임금이 낮은 것은 노동자가 단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니 자본가가 착취하는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을 부흥시켜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와 같이 활동하다가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1932년 6월경 붙잡혔다. 1932년 봄부터 전북 일대에서 동일한 활동으로 총 200여 명이 검거되어 44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예심조서(豫審調書)가 2천여 장이나 되고 서류가 24책 1만여 장에 달하여 전주지방법원에서는 역대 가장 규모가 큰 사건으로 취급되었다. 당시 일제 당국과 언론에서는 이 사건을 ‘전북공산당재건운동(全北共産黨再建運動) 부안노동조합협의회(扶安勞動組合協議會) 사건’으로 다루었다. 오랜 기간 취조와 고문을 받고 1934년 3월 31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4월에 집행유예 4년을 받고 같은 날 전주형무소에서 풀려났다. 그러나 신병 때문에 곧바로 전주시내 병원에 입원하였으나, 이튿날인 1934년 4월 1일 병원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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