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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휘

金永輝

1888. 10. 5 ~ 1927.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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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영휘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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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정읍(井邑)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정읍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조선노농총동맹
  • · 전북민중운동자동맹
  • · 갑자연구회
  • · 조선일보사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7)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7) 1888년 전라북도 정읍(井邑)의 부농 집안에서 태어났다. 활동 당시 전북 전주군 전주읍(全州邑) 다가정(多佳町)에 거주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힌 적이 있으며, 이후 전북과 서울을 왕래하면서 반제국주의 노동운동을 전개하였다. 1923년 전조선노농대회 준비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전국적 노농단체 조직에 참여하였고, 군산노동연맹 평의원으로 역할하며 전북지역 노동운동을 이끌었다. 1924년 1월 전북지역 사회주의자들을 결집시켜 갑자연구회(甲子硏究會)를 결성하였다. 갑자연구회는 제국주의 타도를 목적으로 월례회를 개최하며 사회주의 사상의 연구와 확산을 위해 노력했던 단체였다. 이후 서울청년회계 주도로 추진된 도(道) 단위 사상단체인 전북민중운동자동맹(全北民衆運動者同盟)의 모태가 되었다. 민중운동자동맹에는 군산·김제·익산·논산·대전·홍성 등 전북과 충남지역 인사 다수가 함께하였는데, 이때 군산노동연맹 대표로 참여하였다. 전북민중운동자동맹 편집위원과 회무위원을 맡으며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였고, 암태도소작쟁의를 지원하기도 하였다. 1924년 4월에는 조선노농대회(朝鮮勞農大會)와 조선노농총동맹(朝鮮勞農總同盟) 창립대회에서 전북지역 노동·농민·청년운동단체 인사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는데, 이때 조선노농총동맹 창립대회에서 7인의 기초위원 중 한 명으로 선출되었다. 1924년 6월에는 언론집회압박탄핵연합회 등에 참여하며 일제에 의한 언론·집회의 자유에 대한 탄압을 비판하기도 하였다. 또한 전북민중운동자동맹 기관지 『민중운동(民衆運動)』에 「중국동란과 금후의 태평양」 등의 글을 게재하며 세계 정세를 소개하였다. 일본 경찰은 『민중운동』을 입수하고, 이에 관계된 민중운동자동맹 회원을 대거 검거하였다. 이때 붙잡혀 1925년 12월 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1926년 고등법원에 상고하였으나 징역 8월이 확정되어 8개월간 전주교도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때부터 신경쇠약으로 고통받기 시작하였다. 이후에도 군산지역 각 사회·노동단체를 주도하고, 조선일보 군산지국장을 맡기도 하였다. 이러한 활동 중 1927년 6월 11일 한강에서 의문의 익사체로 발견되었다. 서울과 군산에서는 그를 기리기 위한 사회단체 연합장이 거행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황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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