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학
金永鶴1877. 2. 10 ~ 1932. 1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3
- · 1운동
- · 대한독립애국단 양양군단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920년대 초 국내에서 비밀결사에 가입하여 항일 활동을 한 인물이다. 강원도 양양(襄陽) 출생으로 알려져 있으나, 판결문에 따르면 1877년 황해도 금천(金川)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10년대 전반 황해도 금천, 장단 일대에서 남감리교 전도사로 활동하다가, 정식 목사가 되어 철원 감리교회 교구장이 되었다. 이후 서울과 강원도 영동지방에서 목사로 활동하며, 민족주의 성향의 인사들과 폭넓게 교류해갔다. 이를 바탕으로 1919년 만세운동에 참여했는데, 당시 시무하고 있던 양양의 감리교회는 독립운동의 근거지가 되었다. 1919년 10월 2일, 강원도 철원을 중심으로 대한독립애국단(大韓獨立愛國團) 활동을 펴던 조종대(趙鍾大)를 만나 대한독립애국단 양양군단(襄陽郡團)을 결성하고, 군단장(郡團長)을 맡았다. 대한독립애국단 강원도단 산하의 양양군단을 결성한 후, 중국 상하이(上海)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파견할 청년과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해갔다. 안경록(安慶祿)·김형석(金亨錫)·이근옥(李根玉)·이연수(李延洙)·이석규(李錫圭) 등을 차례로 만나며 조직을 확대해갔다. 새로운 인물과 만날 때에는 소개장을 지참하고 직접 한 사람씩 대면하며 비밀유지에 만전을 기했다. 이들 중 이근옥은 직접 상하이로 망명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양양을 거점으로 강릉 등 강원도 영동지방에서 애국단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해갔다. 그러나 1920년 1월 강원도단의 조직이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붙잡혔다. 같은 해 12월 2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2년 5월 서대문형무소에서 출옥한 후 경기도 가평교회에 있다가 국외 활동을 결심하였다. 1922년 9월경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양주삼(梁柱三) 등과 함께 연해주와 북만주 한인사회를 무대로 항일운동과 선교활동을 병행하였다. 일제는 그의 행적을 예의 주시하였는데, 그의 성향을 ‘민족절대주의자’라고 평하였다. 연해주에서 활동하던 중 1930년 1월 소련 당국에 체포되었다. 10년의 중노동형을 선고받고, 블라디보스토크감옥에서 복역하던 중 옥고로 인해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황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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