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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현

金義玄

1880. 3. 16 ~ 1947.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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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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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괴산(槐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괴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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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괴산군 장연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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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0년 3월 16일 충북 괴산군(槐山郡) 상모면(上芼面) 화천리(花泉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장연면(長延面) 오가리(五佳里)에서 동생 김의대(金義大)와 함께 서당 교사로 활동하였고, 4월 1일과 2일 이틀에 걸친 괴산군 장연면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3일 고종 장례식에 참석할 봉도단(奉悼團)에 가입하여 김의대와 수제자인 박영래(朴泳來)를 대동하고 서울로 상경하여 만세시위를 목격하였다. 고향으로 돌아와 김일곤(金日坤)·정해문(鄭海文)·지민수(池敏洙)·양신집(梁信集) 등과 함께 만세시위 계획을 논의하였다. 거사일은 4월 1일로 결정하고, 이들과 함께 독립선언서와 태극기 수백 장을 준비하여 박영래를 통해 배포하였다. 4월 1일의 만세 시위는 김의대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김의대는 오가리 주민 100여 명을 이끌고 면사무소 앞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전개한 후 면사무소 건물 일부를 파괴하고 해산하였다. 이날 밤 김의대, 박영래 및 마을 주민 30여 명과 함께 다음 날인 4월 2일 면사무소 습격을 도모하고 이를 알리는 통문을 작성하여 추점리(楸店里)·광진리(廣陳里)·방곡리(方谷里)·조곡리(鳥谷里) 등 인근 마을에 배포하였다. 4월 2일 밤 주민 300여 명이 모이자 이들을 지휘하여 면사무소를 공격해 건물을 파괴하고 각종 기구, 집기, 장부들을 파손시켰다. 면장의 사택도 파괴하는 등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다가 출동한 일본 헌병과 연풍면(延豊面) 주둔의 보병파견대에 붙잡혔다. 1919년 5월 8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및 소요죄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여 그 해 6월 2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요죄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을 받아 징역 1년으로 감형되었다. 다시 같은 해 8월 16일 고등법원에서 상고 기각되면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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