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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제

金應濟

1872. 4. 16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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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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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신흥(新興)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신흥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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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07)

관련 사건

  • · 이천군 영양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7) 1872년 4월 16일 함경남도 신흥군(新興郡) 원평면(元平面) 신성리(新成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강원도 이천군(伊川郡) 영양면(榮壤面) 내락리(內洛里)에 거주 중이었고 영양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천도교인으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이명은 김응재(金應在)이다. 이천군의 만세시위는 1919년 3월 2일 천도교 평강교구의 장선처(張善處)가 이천군 동면(東面) 정동리(定洞里) 주일환(朱日煥)의 집에서 이춘호(李春浩)에게 독립선언서 15장을 전달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춘호는 이를 읍내면(邑內面) 탑리(塔里)의 천도교 이천교구에서 동면, 서면(西面), 용포면(龍浦面), 판교면(板橋面) 등 군내 여러 곳으로 배부하였다. 그러나 본격적인 만세시위는 4월 4일부터 전개되었다. 4월 4일 새벽, 천도교인 김병하(金炳河)·김이순(金利淳)·이여종(李呂鍾) 등을 집으로 불러 시위계획을 논의하였다. 영양면의 소재지인 지석리(支石里)의 장날인 이날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또한 그 자리에서 만세시위에 사용할 목적으로 태극기 2장을 만들었다. 태극기를 김혁근(金赫根)과 이두영(李斗榮)에게 전달하면서, 이들에게 지석리 장터로 가서 군중들에게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도록 하였다. 4월 4일 오후 3시 지석리 장터에는 500여 명의 군중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대부분 내락리와 지상리(支上里), 지하리 등 영양면 주민이었지만, 교통이 편리하여 외부와의 교류가 활발했던 영양면의 특성상 인접한 강원도 평강군(平康郡)과 황해도 신계군(新溪郡)에서 온 이들도 다수였다. 김병하·김이순·김혁근·이두영·이여종 등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시위대는 오후 10시까지 태극기를 흔들면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만세시위는 다음날인 5일에도 계속되었다. 새벽 5시 곤봉으로 무장한 60여 명의 시위대를 이끌고 지하리에 있는 헌병주재소로 향하였다. 시위대는 헌병주재소에 도착하여 돌을 던지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또한 총으로 무장한 헌병들에 대항하여 곤봉을 휘두르며 육박전을 벌였다. 이에 헌병들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여 5명이 사망하였고, 3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시위 과정에서 붙잡혀 1919년 5월 19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7월 1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재차 불복하여 “나는 조선 민족으로 정의 인도에 기초하는 의사 발동으로 범죄가 아니다. 그런데 제1심 및 제2심에서 받은 유죄 판결은 부당하여 복종할 수 없는 위법인 것이다.”라고 상고이유를 밝혔으나, 1919년 9월 18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면서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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