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應守
應守1901. 1. 21 ~ 1979. 8. 1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부산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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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5) 1901년 1월 21일 경상남도 통영군(統營郡) 통영면(統營面) 대화정(大和町, 현 통영시 중앙동)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김수(金壽)를 사용하였다. 1919년 부산 일신여학교(日新女學校) 고등과에 재학 중이던 당시 부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서울에서 만세시위가 거행되고 이 소식이 지방 각지로 전파되면서, 부산에서는 1919년 3월 2일 학생대표와 기독교 인사들을 통해 서울의 독립선언서를 전달받고, 비밀리에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1919년 3월 10일 새벽 부산진(釜山鎭) 일신여학교 기숙사 주변에 살포된 독립선언서 격문 전단을 발견하고 같은 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던 주경애(朱敬愛)에게 보여주면서 “지금이 전 조선인이 결집하여 독립을 쟁취할 절호의 기회로 교사와 학생을 조직하여 독립만세운동을 거행하자”고 주장하였다. 이에 주경애는 박시연(朴時淵)을 비롯한 동료 교사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학교 차원의 만세시위 결행에 대한 동참을 이끌어 낸 뒤, 학생 대표들에게 이 소식을 알려 학생 규합을 도모하였다. 이때 부산 지역 학생을 조직화하는 책임을 맡게 되었다. 우선 같은 학교 고등과 4학년 김반수(金班守)·심순의(沈順義)·김복선(金福善)·김봉애(金奉愛), 고등과 2학년 김신복(金新福), 고등과 1학년 이명시(李明施)·송명진(宋明進), 학년 미상 김순이(金順伊)·박정수(朴貞守) 등 학년별 대표에게 거사 계획을 알려주고 동지로 규합한 뒤 학생 동원과 거사 준비 책임을 분담해주었다. 더불어 부산 제2상업학교(구 부산상업고등학교, 현 개성고등학교)에 연락하여 연합시위를 전개할 것을 제의하였다. 거사 전날인 3월 10일 저녁에는 수업을 마친 뒤 기숙사로 돌아와 고등과 학생 11명과 함께 치마를 탈색해 태극기 50여 개를 제작하였다. 거사일인 3월 11일이 되자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에 집결한 학생들은 오후 9시를 기해 교사 주경애·박시연 등과 함께 교내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며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이어 시내로 진출하여 좌천동(佐川洞) 등지에서 주민에게 태극기를 배포하면서 앞장서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주민 수백 명이 시위대에 합류하였고, 그들은 부산 시내를 행진하였다. 시위 행렬의 선두에서 시위대를 이끌던 중 해산을 위해 출동한 일제 군경에게 붙잡혔다. 1919년 4월 26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월을 받았다. 옥고를 치르던 중 고문 후유증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가석방되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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