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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수

金殷秀

1884. 4. 17 ~ 1960.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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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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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용인(龍仁)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용인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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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용인군 원삼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4년 4월 17일 경기도 용인군(龍仁郡) 원삼면(遠三面) 사암리(沙岩里, 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사암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에도 사암리에 거주하며 여인숙을 운영하였다. 1919년 3월 15일 원삼면 좌항리(佐恒里)에 사는 김영달(金永達), 맹리(孟里)에 사는 이은표(李殷杓)·이용환(李容煥) 등이 서울에서의 만세운동 소식을 듣고 이은표의 집에서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다음날 밤에는 평창리(坪倉里) 도창마을 입구 최상근(崔相根)의 주막에서 최종 모임을 갖고,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3월 21일 새벽, 원삼면과 양지면(陽智面)의 경계인 좌전고개에서 횃불을 들고 만세운동을 시작하였다. 독립만세 소리를 들은 좌항리와 맹리의 주민이 모여 들면서 시위대를 형성하였다. 이때 같은 마을에 사는 안명옥(安明玉), 좌항리에 사는 황경준(黃敬俊) 등과 함께 시위대에 합류하여 주민들에게 독립만세를 부를 것을 권유하였다. 이어 고당리에 소재한 원삼면사무소로 독립만세를 부르며 행진하자 주변의 고당리와 문촌리 주민이 합세하였다. 새벽 3시경 원삼면사무소 앞에 도착하여 주민 200여 명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는 등 적극적으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날 시위대와 함께 외사면(外四面) 백암리로 이동하여 외사면사무소와 백암경찰관주재소로 행진하였으나 원삼면과 외사면의 경계인 비둘기고개에서 일제 경찰의 발포로 시위대가 해산하자 마을로 돌아왔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고, 1919년 5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 해 7월 1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9월 22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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