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학
金允學1876. 2. 24 ~ 1944. 5. 1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조선독립단 이원지단
포상 정보
- · 애족장(1994)
관련 사건
- · 이원군 서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4) 1876년 2월 24일 함경남도 이원군(利原郡) 동면(東面) 상선리(上仙里)에서 태어났다. 천도교인으로 위탁 판매업에 종사하면서 여인숙을 운영하였다. 1919년 3월 10일 이원군 서면에서 펼쳐진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원군의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7일경 동면 의덕리(儀德里)의 이도재(李道在)가 서울에서 온 기독교인 박용해(朴龍海)로부터 독립선언서 1매를 전달받으며 시작되었다. 이도재는 함흥군(咸興郡) 주북면(州北面)의 천도교인 이기완(李岐完)과 함께 한국인 관리를 동참시키기 위한 자금 모집 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이도재는 바로 천도교 이원교구로 가서 교구장인 김병준(金秉濬)을 만났다. 김병준과 이도재는 이원군의 만세시위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공시우(孔時祐)·박승룡(朴承龍)·장홍규(張弘圭) 등 이원지역 천도교 중심인물 13인을 불러 조선독립단(朝鮮獨立團) 이원지단(利原支團)을 결성하였다. 또한 3월 10일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만세시위를 준비하기 위해 서면(西面)에 있던 천도교 이원교구당의 등사판을 이용하여 독립선언서 500여 매를 등사하였다. 그리고 “우리들 조선 민족은 세계의 대세에 따라 민족자결의 원칙에 의해 조선의 독립을 선언하고 2천만 동포에게 이를 알린다”는 내용의 격문을 100여 매 작성하여 배포하였다. 인근 지역으로는 사람들을 파견하여 10일 만세시위에 적극 참여하도록 독려하였다. 서면의 장날인 3월 10일 서면 남문리시장(南門里市場)에는 700여 명의 군중이 모여들었다. 이때 김병준·박승룡·장홍규·김약준(金若濬)·김중삼(金仲三)·김창렬(金昌洌)·염처학(廉處學)·최병원(崔秉元)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 만세시위는 박승룡의 사회로 시작되었는데, 시위대의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외치고 깃발을 흔들면서 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대는 일제 경찰에 의해 해산되었고, 그 과정에서 주도자 6명이 붙잡혔다. 이 일로 1심 재판에서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지만, 8월 1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1919년 10월 25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면서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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