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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권

金潤權

1876. 11. 14 ~ 1944.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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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윤권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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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양(晋陽)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진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3)

관련 사건

  • · 진양군 미천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3) 1876년 11월 14일 경상남도 진양군(晋陽郡, 현 진주시) 미천면(美川面) 벌당리(伐塘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진양군 미천면(美川面) 벌당리 814번지에 거주하다가 진주 장날인 3월 18일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미천면에 사는 곽복금(郭福金)의 집에서 박봉제(朴奉濟) 등 11명의 동지들과 함께 회합하여 비밀결사인 독립의우회(獨立義友會)를 조직하고 감찰부서의 책임을 맡았다. 이 회합에서 3월 20일 밤을 틈타 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1919년 3월 20일 밤 미천면 동매(東梅) 마을 앞에 독립의우회 회원 12명과 주민 700여 명이 운집하였다. 이 때 박봉제가 스스로 두루마기를 찢어 대한독립이라고 쓴 큰 기를 만들어 장대에 매달아 앞세우고 독립의우회 맹약을 낭독하였다. 독립의우회 회원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자 주민들이 연호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으며, 이 때 시위대 선두에 서서 시위를 지도하면서 미천면사무소 방향으로 행진하였다. 시위군중이 안간리 방면으로 진출하자고 요구했으나 밤이 깊었으므로 귀가하자는 의견이 있어 해산하였다. 그날 밤 일본 헌병대에 의해 붙잡히고 말았다. 1919년 6월 4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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