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允京
允京1869. 2. 24 ~ 1945. 1. 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6)
관련 사건
- · 양주군 와부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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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6) 1869년 2월 24일 경기도 양주군(楊州郡) 와부면(瓦阜面) 송촌리(松村里, 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에서 태어났다. 한자를 달리하여 김윤경(金允經)으로도 쓴다. 기독교인으로 1919년 당시 향리에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다가 와부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양주군의 만세시위는 3월 14일 진접면(榛接面) 장현리(長峴里), 한금면(漢金面) 금곡(金谷)과 와부면 송촌리에서 시작되었다. 특히 3월 14일 일어난 와부면 송촌리 만세시위는 이정성(李正成)·김춘경(金春經)·김현모(金顯模)가 김정하(金正夏)와 계획한 것으로 이들은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양주군 와부면 일대를 순회하였다. 여기에 자극받은 송촌리 마을주민 100여 명이 3월 15일 이른 아침에 집합하자 정일성(鄭一成)·이갑동(李甲同)·오성준(吳成俊)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 태극기를 들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면사무소가 있는 덕소리(德沼里)를 향해 행진하기 시작하였다. 와부면 송촌리를 출발하여 조안리(鳥安里)·능내리(陵內里)를 지나 오후 7시 덕소리에 도착하였다. 그 과정에서 전태현(全泰鉉)·김현유(金鉉有)·박경식(朴景植) 등이 가세하여 시위 참가자가 약 500명에 달하였다. 이에 놀란 덕소리의 일제 헌병은 시위대를 향해 해산을 명령하였다. 만세운동 참가자들이 그 명령에 굴하지 않자 주도자 3명을 체포하였다. 이에 시위대는 헌병주재소로 쇄도하여 돌과 곤봉으로 저항하였다. 일본 헌병은 공포를 발사하며 시위대를 해산시켰고 37명을 체포하였다. 다음날인 3월 16일 일제 헌병은 와부면 송촌리까지 진입하여 만세시위 참가자 21명을 색출한 후 체포해 갔다. 3월 15일 만세시위로 붙잡힌 인원은 총 65명에 달하였는데 대다수가 기독교도였다.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4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과 조선형사령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19년 5월 31일 경성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7월 5일 고등법원에서도 상고가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렀고 1920년 3월 5일 만기 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최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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