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정
金元貞1885 ~ 1920. 8. 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후남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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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황해도 장연군(長淵郡) 후남면(候南面) 원촌리(院村里) 출신이다. 이명은 김복현(金福鉉)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9년 당시 35세로 1885년생으로 추정된다. 후남면 남호리에서는 1919년 4월 8일에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수십 명의 군중이 남호리에 모여 불을 피워놓고 만세를 부르며 조선 독립을 축하하고 함성을 지른 뒤에 해산하였다. 남호리 장날인 4월 11일 최동석(崔東錫)·이명로(李明魯) 등과 함께 기독교인과 주민을 규합하여 남호리 장터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오전 11시가 되자 큰 태극기를 앞세운 약 200명의 시위대와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면사무소 방향으로 행진을 시작하였다. 시위대는 면사무소 직원들에게 한국의 독립을 알려주고 실력을 행사하자고 결의하였다. 면사무소에 이르자 직원들이 시위대를 피해 문을 걸어 잠갔지만, 문을 부수고 들어가 면서기 등을 구타하였다. 장연경찰서는 남호경찰관주재소(南湖警察官駐在所)까지 위험하다고 판단되자 순사들을 파견하여 주도자들을 체포하고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붙잡혔다. 1919년 7월 26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조선은 4,000여 년의 역사를 갖춘 당당한 민족인데 현재는 불행히도 남의 밑에서 부자유스러운 생활을 하고, 야만족과 같은 대우를 받아 실로 원통하고 민족자결주의의 영향으로 조선독립을 외친 것은 합당한 행위이다. 따라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형에 처하는 것은 무도덕·무정의”한 것이라고 항변하며 상고하였다. 하지만 그 해 9월 2일 고등법원에서도 상고가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옥고를 치르다가 1920년 8월 2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임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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